언론을 통해 본 김기덕 감독의 인상과 언행은 전라도 말로 아그똥하다. 윗사람이나 주변에 매우 반항적인 사람을 표현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다. 그를 보면 항상 뭔가에 불만스럽고 적대적이며 피해의식에 젖어 있어 누구에게라도 시비를 걸 것 같은 태도이다.
평탄치 않은 환경에서 비롯한 그의 의식은 그대로 작품에 투영돼 있다. 그가 머무는 공간은 누구에게도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고 자신도 밖으로 나가기 힘든 '섬'이거나 아무도 옆에 없는 '빈집'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은 '아리랑'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 열패감을 그 밑바닥까지 드러냈다.
그는 2006년 MBC 100분토론에서 당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괴물'에 대해 "한국 영화의 수준과 관객의 수준이 최고점에서 만났다" 고 쏘아부쳤다. 사석에서도 유럽에서는 자기의 작품을 인정하는데 국내 관객들이 문제라며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발언을 종합해보면 그에게는 주체할 수 없는 실험 정신과 함께 타인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세속적인 욕구가 강하다.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했음에도 국내 관객들은 그를 외면했고, 그러면 그는 가학과 피학을 거듭했다. 주변의 시선이 차가울수록 그는 독하게 주변과 사회에 앙갚음했고, 관객들은 더 멀어졌다.
그에게 18번째 작품'피에타'는 구세주이다. '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의 제목이 말하는 그 대상은 어쩌면 그 자신이었다. 기존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용과 표현을 순화하고, 제작부터 홍보마케팅까지 치밀한 시나리오처럼 진행됐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이례적으로 4억 원을 투자 받았고 영화 홍보를 위해서 극도로 불신했던 언론에도 손을 내밀었다. 4개월 전 자신의 삶을 다룬 KBS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갔고, 방송시점도 영화개봉시기에 맞췄다. 또 KBS'두드림'SBS'강심장'등 연예프로그램 게스트로 나가 부드럽고 친근한 이미지를 알리려고 애썼다. 게다가 영화 제작비를 제외한 마케팅 비용 등에도 7억 원을 쓰고 메이저 배급사와도 계약했다. 영화제 시상식에서 꽁지머리에 개량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른 것은 국민적 공감을 얻으려는 민족주의적 퍼포먼스이자 대중에 다가서서 소통하려는 화해의 손짓으로 풀이된다.
노력에 보답하듯 '피에타'는 40만 고지를 넘어 '나쁜 남자'가 기록한 71만에 이를 기세이다. 미안한 얘기지만'나쁜 남자'가 자기 애인을 창녀로 만든다는 자극적인 내용과 선정적인 포스터 덕분이라면 '피에타'는 수상과 홍보효과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피에타'를 보고 나온 나는 물론이고 주위에 있던 수녀님, 교인들로 보이는 여성들의 반응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영화는 문화이면서 동시에 산업이다. 한국영화가 흥미위주로만 흐르는 건 문제다. 또'괴물'이 스크린을 잡아먹는 괴물이고, 좌석점유율이 낮음에도 내려가지 않는 '도둑들'이 '스크린 도둑'이라는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대중문화는 공허하다. 그런 측면에서 '피에타'는 전환점이 될 만하다. 예술영화를 고집한다면 관객들의 반응에 연연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가면 된다. 반대로 관객들을 붙잡으려고 한다면 대중의 감성도 읽어야 한다. 예술성 높은 대중영화를 만들면 되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김기덕 스타일'로는 쉽지 않은 길이다. 자신의 작품을 대중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불평은 마치 정치인이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는다고 유권자를 탓하는 것과 같다. 약 20년 전에도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로 113만 명을 동원하지 않았는가. 당시 배급방식이나 극장수 등을 고려하면 오늘날 1,000만 명에 이르는 성과다.
김 감독의 영화 '활'의 엔딩 자막은 이렇게 끝난다. '팽팽함에는 강인함과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죽을 때까지 활처럼 살고 싶다'
지나치게 팽팽하면 활은 부러지고, 너무 느슨하면 화살이 날아가지 않는다. 김 감독이 대중과 어느 지점에서 화해하여 어디까지 화살을 날릴지, 또 그 화해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하다.
최진환 문화부장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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