껴안으면 한 움큼이나 될까. 고국에서 벌어지는 소수민족 탄압을 피해 지난 7월 한국으로 탈출한 깡마른 소말리아 소년 Y(15)군은 서툰 한국말로 "나는 난민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법적인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채 비자 만료일을 앞두고 있는 형편이다.
Y군은 1997년 종족 분쟁으로 하루에도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태어났다. 소수 민족인 고보예(Goboye)족에 속한 Y군 일가는 종족 분쟁 와중에 모두 숨지거나 실종됐다.
"2007년 큰 누나가 성폭행에 저항하다가 살해됐고, 1년 뒤에는 폭격으로 아버지를 잃었어요. 같은 해 마을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어머니와 나머지 형제들이 실종돼 현재 생사를 알지 못합니다."
졸지에 고아가 돼 구두닦이로 돈을 벌어 연명하던 Y군은 지난 2월 삼촌까지 타 부족 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탈출을 결심했다. 한 친척의 도움으로 출국 브로커를 통해 목적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난 7월 3일 도착한 곳이 바로 인천국제공항. 하지만 공항 출입국 관리소는 여권이 없는 Y군에게 입국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Y군은 한달 가까이 출국 대기실에서 치킨버거와 콜라로 삼시 세끼를 때우며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과 같은 생활을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치킨버거를 먹었어요. 좁은 방에서 함께 지냈던 다른 입국 불허자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입국 허가를 받았고, 저만 계속 남아있었어요."
같은 달 26일 공항 측은 물리력을 동원해 Y군을 강제로 소말리아행 비행기에 태우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여권이 없는 Y군을 비행기에 태울 수 없었던 공항 측은 중국 소말리아 대사관을 통해 Y군의 여권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Y군은 공항 측의 이러한 시도에 "소말리아로 돌아가면 나는 죽어요. 인권을 보호해 주세요"라고 외치며 극구 저항해 위기를 넘겼다. 며칠 뒤 공익변호사 단체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가 공항 측 처분에 대해 행정 소송을 내면서 Y군은 결국 입국이 허가됐다. 3개월짜리 단기 비자를 받아 공항을 빠져 나온 Y군은 현재 사단법인 '피난처'가 운영하는 서울 동작구 난민 보호소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Y군이 무사히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 김 변호사의 도움으로 인천공항 출입국 관리사무소 등을 상대로 난민인정신청 거부 처분 취소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지만 미성년자인 Y군은 법적 후견인 없이는 법률 대리인을 선임할 수 없어 아직 재판에 진척이 없다. 후견인 선임을 담당하는 서울시는 외국인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처리를 미루고 있다. 시 관계자는 "Y군의 국적이나 부모님의 생사여부가 입증되지 않으면 후견인을 선임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일이 처음이라 관련 절차를 검토하는 중이다"고 밝혔다.
Y군은 최근 병원 검진에서 '가족을 잃은 충격으로 정신분열증 초기 증세를 보이는 등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국에 머물고 싶어요. 강제로 소말리아로 보내진다면 저는 제 삼촌처럼 죽임을 당하고 말 거예요. 이곳에서 공부를 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7일 기자와 만난 Y군이 남긴 애절한 말이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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