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니?"
어른들한테 많이 들어본 얘기다. 아니, 지금도 듣는다고?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짧다. 미리 짜놓은 시간표대로 시간엄수, 공정확실하게 쫓아가지 않으면 이 살벌한 세상에서 '루저'가 되는 것은 순간이라고 겁을 준다. 그런데 하라는 데로만 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막상 어른이 되어도 세칭 '쓸 데 있는 짓'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것이 작금의 문제다. 덕분에 한때는 88만원 세대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쓰고 난 나머지'라는 뜻의 잉여라고 자조적으로 얘기한다. 세상에 쓸 곳이 없으니 그냥 기다리며 지내는 짜투리같은 존재로 자신을 규정한 것이다. 영양가 있는 쓸데 있는 존재가 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낙담하며 세상을 원망해도 남을 잉여들은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그것도 꽤나 '쓸 데 없는 것'들임이 분명한 것들에. 인터넷 게시판에 짤방을 만들어 패러디 사진을 올린다. 블로그에 게임의 공략법이나 IT기기의 사용법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저 사람들이 남기고 간 감사의 댓글과 조회수가 칭찬이자 원동력이다. 그런 쓸데없는 잉여짓이 이번에 한 건을 했다.
시작은 8월 30일 평소 잉여들이 즐겨 찾는 한 카메라 동호회의 자유게시판에 '혼자 24인용 텐트치기'를 주장하는 것은 허세라는 얘기였다. 한 사람이 "되는데요"라고 올렸고, 게시판은 삽시간에 불이 붙었다. 두 시간 안에 텐트치기의 내기로 번졌고, 사람들은 T24라는 소셜페스티벌을 자발적으로 조직해서 텐트를 협찬받고, 장소를 섭외하고, 인터넷 생중계를 기획했다. 발단에서 10일도 안된 9월 8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는 2,000여명이 실제로 몰려왔고, 10만명이 실시간 중계를 보는 큰 행사가 되어버렸다. 텐트는 단 1시간 반만에 완성되었고, 사람들은 환호를 했다.
참 쓸 데 없는 짓을 한 것 아닌가? 군용텐트 막사를 치는 것을 혼자 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군전력상승? 그러나 '이런게 될까'라는 상상을 했고, 누군가 할 수 있다고 하자 응원을 하고 그걸 보기 위해 마음과 힘을 모았다. 기존의 사회조직이었다면 오랜 시간과 예산이 소요될 일인데, 주최와 참여가 하나가 되어 단 열흘만에 뚝딱 만들어 낸 것이다. 의미를 찾고 수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지겹고 짜증 난다. 재미있을 것 같은 상상이 정말 실현되는지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쏟을 이유는 충분했다. '쓸 데 있는 일'만 오랫동안 해봤는데 해보니 별 것 없고, 그 일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잉여'가 내 자리였다. 그런데, 잉여가 좋은 점이 있었다. 바로, 그냥 재미있어 보이는 부분에 내 에너지를 투입해도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니 즐거움은 더 컸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인터넷이나 보면서 쓸데 없는 짓을 하고 소문만 양산한다고 혀를 끌끌 찬다. 정말 그런 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잉여로움은 자조적인 허세나 세상회피가 아니라, 엉뚱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는 시간이다. 언젠가 그 힘은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다. 주어진 숙제만 열심히 해온 사람은 그냥 그 테두리 안에서 일 등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정답대로만 살아온 사람은 문제가 달라지면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세상의 큰 틀을 바꾸는 것은 테두리 안이 아니라 밖에 있던 사람들이 된다. 지금은 잉여일지 모르나, 언제 그 포지션은 뒤바뀔지 모른다. 이번 T24를 보면서 미래를 바꿀 힘의 원천을 보았다. 위에서 시킨 것도 아니고, 몇 명의 천재가 주도하는 것도 아닌, 잉여라고 자인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자발성과 엉뚱함이 상상도 못할 미래를 제시할 것이다. 그러니 기존세대는 젊은이들에게 과감히 잉여로움을 허락해야할 것이다. 그게 우리의 창조적 미래를 위한 준비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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