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씨의 유고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 (마음산책 발행)이 나왔다. 작가의 생전에 책으로 묶지 않고 쓴 산문을 장녀 호원숙씨가 찾아내 2000년 이후 쓴 38편만 추렸다. 호씨는 전화인터뷰에서 "어머니는 '내가 필요한 곳에 다 갈 수는 없지만, 글보시는 한다'며 작은 잡지사, 사보 청탁도 다 들어주셨다"며 "원래 가족, 가까운 지인들끼리 읽으려다 어머니 글을 개인의 글이 아니라는 생각에 책으로 엮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신간에는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밝힌 자전적 고백(1부 '나는 왜 소설가인가')부터 일상 속 깨달음(2부'시간은 신이었을까'), 이 시대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3부 '세상을 지탱하는 힘'), 집과 자연에 대한 예찬(4부 '전원생활은 고요한가'), 그리운 사람들을 기리는 글(5부 '깊은 산속 옹달샘') 등이 담겨있다. 세상에>
표제인 '세상에 예쁜 것'은 화가 김점선 씨로 추정되는 지인의 죽음에 관한 글이다. 평소와 다르게 눈물을 흘리며 약한 모습을 보이던 후배 화가가 침대 옆 잠든 손자의 발을 보며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던 것. 작가는 당시의 감상을 '수명을 다하고 쓰려지려는 고목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몽실몽실 돋는 새싹을 볼 수 있다면 그 고목나무는 스러지면서도 얼마나 행복할까. 병자도 지금 그런 위로를 받고 있음이 분명했다'(83쪽)고 전한다. 호씨는 "책에 유독 젊은 세대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많다. 노년에 이르러서 후손들에게 뭔가 좋은 얘기를 들려주려고 애를 쓴 흔적 같다"고 말했다.
작가가 생전 일일이 산문으로 다시 정리해 둔 독자와 나눈 대담, 작가가 되고 싶은 초등학생에게 쓴 편지, 손자에게 하고 싶은 얘기 등도 실렸다. 작가가 마지막으로 쓴 산문은 법정스님을 회고한 글 '깊은 산속 옹달샘'이다. 이밖에 피천득 이병주 박경리 장영희 등 작고한 문인들에 대한 회고가 담겨 있다.
호씨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 생신(10월 20일)을 앞두고 책이 나왔다. 이번 수요일에 가족, 지인들과 묘지에서 출판 기념 미사를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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