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인혁당 사건 관련 발언을 계기로 당내 중진들 사이에서 박 후보의 역사관 전환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또 인혁당 발언 수습 과정에서 당 지도부와 캠프 측근들이 박 후보의 입만 쳐다보는 식의 일방향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쇄신파의 남경필(5선) 의원은 14일 의원총회 등에서 "박 후보는 '개인 박근혜'가 아니라 '새누리당의 박근혜'"라며 "대선 후보의 역사관은 당의 것이어야지 개인의 것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후보의 말에 우르르 쫓아가는 듯한 의사결정 구조는 잘못됐다"며 "박 후보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다른 것은 당원과 함께 하는 것인데 혼자 말하는 구조로 가면 안 원장과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친박계이지만 박 후보와 소원해진 유승민 의원도 전날 "5∙16이 쿠데타라는 것은 상식이고 유신이 헌정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에 많은 분이 동의하고 있다"면서 "박 후보가 스스로 국민 눈높이에서 이 문제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내에선 아무리 대선 후보의 위상을 감안하더라도 149석 집권당의 역사인식이 한 사람의 의중이나 발언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당헌ㆍ당규에 '인권과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를 당의 목적으로 해놓았으면 인혁당 문제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도 그나마 후보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는 몇 안 되는 측근들도 후보의 의중만 살피려 한다"고 비판했다.
박 후보는 특정인에게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캠프 내 대선기구들도 수평적으로 존재하며 제각각 박 후보에 직보하는 체제이다. 권력집중은 막을 수 있지만 특정 사안이 발생했을 때 후보 사인이 떨어져야 비로소 조직이 작동되는 단점이 있다. 일부 업무에서는 후보 캠프와 당 기구의 역할분담이나 유기적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캠프 내부에서도 손발이 따로 논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준길 공보위원의 전화 통화가 논란을 빚자 당에서 '공보단과 대선기획단은 별개'라는 취지의 책임 회피성 문자메시지를 기자들에 보낸 게 단적인 사례다.
당 지도부 역시 "인혁당 관련 판결은 두 가지"라는 박 후보의 발언이 나온 지난 10일 이후 이에 대한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아침 회의 등에서도 상투적인 야당 비판 등 의례적인 모두 발언 정도만 있다. 이런 와중에 친박계 내부에서도 공약을 개발하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중심의 신주류와 공약을 입법화하는 이한구 원내대표 등의 구주류 사이에 노골적인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정보에서 홀대받고 있는 비박 진영 인사들의 소외감도 커지고 있다.
한편 홍일표 대변인은 인혁당 발언 사과를 둘러싼 당내 혼선과 관련, 12일 밤 당 지도부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황우여 대표는 "당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일을 하다가 빚어진 일인 만큼 사퇴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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