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발사는 비밀을 말할 수 없어 속병이 생깁니다. 답답한 심정에 산에 올라가 구덩이를 파고 비밀을 털어 놓은 뒤 속앓이를 해소했다는 우화이지요.
사회관계형서비스(SNS)인 트위터에 이 옛 이야기 같은 곳이 등장했습니다. 일명 '대나무숲'입니다.
지난 12일 트위터에 갑자기 등장한 '@bamboo'(대나무)라는 계정은 'XXX 옆 대나무숲'이라는 이름으로 비밀 글들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출판사 옆 대나무숲''우골탑 옆 대나무숲''촬영장 옆 대나무숲'처럼 직업과 관련된 이름 아래 공통된 일을 하는 종사자들이 차마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하는 속내를 털어 놓습니다.
방법은 최초 계정 개설자가 특정 대나무숲을 만들면서 비밀번호를 공개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트위터 아이디가 아닌 해당 대나무숲 아이디로 글을 올릴 수 있어 익명이 보장됩니다. 대나무숲의 성공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나'를 감출 수 있다는 것이지요.
벌써 이틀 만에 출판사, 디자인회사, 영화제작사, 대학가, 광고회사, 신문사 등 수십여 직업군의 대나무숲이 등장하며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전무, 너 님이 사장 동생인건 아는데요, 왜 반말해요?''처음 보여줬을 때 꼼꼼히 좀 보시지, 이제 와서 바꾸라면 화가 나요' '발행부수 1만부 미만 월간지는 다 교열기자를 자르는 추세입니다'등의 불만부터 'XX회사 기자실은 소파도 너무 편하고 의자도 편합니다'등 정보성 글까지 다양합니다. 개중에는 내부 고발성 글들 때문인 듯 계정이 갑자기 정지된 경우도 있습니다.
'대나무숲'신드롬은 그만큼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나 SNS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한 소통의 시대를 살면서도, 의외로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대로 못하고 가슴에 묻어둔 사연들이 많다는 반증입니다. 그래서 익명의 대나무 숲이 인기를 끄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합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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