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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혹시 얄팍한 상술?… '착한 소비' 가면 착용 의심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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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혹시 얄팍한 상술?… '착한 소비' 가면 착용 의심받다

입력
2012.09.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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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라는 미국 청년은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중 많은 어린이들이 맨발로 걸어다니는 모습을 봤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민속 신발인 알파르가타에서 영감을 얻어 편안하고 단순하며 독특한 디자인의 신발 '탐스'를 만들고,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신발 한 켤레를 맨발의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슈 드롭(shoe drop)'이라는 기부 행사를 선보였다.

수익금 일부가 아닌 제품이 팔릴 때 마다 다른 제품을 하나씩 기부하는 이른바 '1 더하기1(one for one)' 기부 행사는 전세계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탐스는 순식간에 세계적 상표로 성장했다. 덕분에 탐스는 설립 4년 만인 2010년까지 100만 켤레, 지난해 말에 총 200만 켤레를 기부했다.

그러나 착한 소비의 상징이 된 탐스에 대해 비판도 만만치 않다. 현물을 제공하는 기부 행사가 결국은 판촉 활동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경쟁사가 아닌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에서 일하는 각종 비영리단체나 국제 활동가들 사이에서 제기된 주장들이다.

다양한 비영리단체에서 20여년 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기부방법을 소개하는 블로그 '좋은 의도만으로 충분치 않다'(http://goodintents.org)' 운영자인 손드라 시멜펜딩은 저개발국에 신발이나 의류 같은 생필품을 무료로 주는 현물기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그는 탐스가 '운동'이라고 부르는 '1 더하기 1' 기부에 대해 "어디까지나 마케팅 기법일 뿐"이라고 말했다.

손드라 외에 많은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이 여러 이유로 현물 기부를 비판하고 있다. 우선경제적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저개발국의 유일한 경쟁력은 싼 인건비인데 선진국의 품질 좋은 신발이나 티셔츠가 기부를 통해 공짜로 들어오면 현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 이렇게 돼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결국은 더 가난해지게 된다는 주장이다.

약간의 돈만 있으면 현지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신발이나 의류를 굳이 운송비를 들여보내는 것도 극히 비효율적이다. 오히려 신발 값보다 운송비가 더 들기 때문이다.

세이브더칠드런 활동가인 김현주씨는 "2010년 미국에서 '아프리카에 티셔츠 100만장 보내기 운동' 바람이 불었다가 많은 활동가들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지적하면서 결국 취소됐다"고 말했다. 이 행사를 처음 제안한 온라인 마케팅 회사는 활동가들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행사를 취소하고, 기부 받은 티셔츠는 미국 내 노숙자 쉼터에 제공하기로 했다.

탐스도 활동가들의 문제제기를 적극 수용했다. 탐스 한국지사 관계자는 "창업 당시만 해도 단순히 '신발을 하나 팔면 하나 기부하겠다'는 생각이었을 뿐 부작용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지금은 엄격한 심사를 거친 현지 비영리단체와 함께 기부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판매용 신발을 생산하는 중국 공장 외에 기부용 신발 전용 공장을 가장 큰 수혜지역인 남미 아르헨티나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설립해 물류비도 줄이고 지역에 일자리도 창출했다"고 덧붙였다.

저개발국 주민들에게 현물을 주는 방식은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선진국 사람들이 그들이 만든 물건을 동등한 입장에서 사는 게 아니라, 공짜로 주면서 시혜를 베푸는 식의 기부는 자칫 받는 사람들의 존엄성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빈국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도 문제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가도 신발 가게가 있는데, 마치 가난한 나라에는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만 살고 산업이라고는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인양 생각하게 되는 것.

활동가들은 정말 의미 있는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뿌듯함'이라는 자기 만족적 감정보다는 냉정한 이성으로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소비자들이 아프리카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현지 주민들의 환경을 개선하고, 현지의 원료를 사용해 제조한 제품을 사는 것은 그 한 방법이다. 일례로 미국에 수출하는 '올리베르테(Oliberte)' 신발은 에티오피아, 라이베리아, 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에 공장을 두고 100% 현지인을 채용하고 현지 농가에서 구입한 소, 염소, 양 등의 가죽과 천연고무 등을 원료로 세련된 디자인의 가죽 신발을 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정무역 가게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아프리카나 저개발국 여성들이 직접 제조한 스카프나 모자, 의류, 수공예품 등을 사는 것도 현지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우물 펌프 설치 등 생활환경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최근 제일모직의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는 해외시장에서 인도, 라오스 등의 여성들이 만든 스카프와 가방, 지갑을 판매했는데 일절 홍보를 안 했는데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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