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처럼 번지는 중동의 반미시위는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욕보이기 위해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한 편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반미시위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반미시위의 근본 동인을 파악하고 파급력을 짐작하려면 '아랍의 봄' 이후 변화한 중동 국가들의 정치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는 13일 반미시위가 과격화한 배후에는 이슬람 원리주의 그룹 살라피스트가 있다고 지적했다. 초기 이슬람교 가르침을 강조하며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매우 엄격히 해석하는 살라피스트는 이슬람주의를 강조하는 무슬림형제단보다 더 원리주의에 가깝다.
11일 발생한 이집트 미 대사관 공격 및 리비아 미 영사관 습격 사건에서 뚜렷한 연관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 곳의 공격 모두 살라피스트가 가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살라피스트는 이집트에서 누르당(黨)과 아살라당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리비아에서도 소요 사태에 관여해 왔다. 살라피스트는 이슬람의 이단 선고에 해당하는 타크피르(무슬림 배신자를 고발하는 것)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서방 전문가들은 살라피스트 교리와 이슬람 테러단체 사이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집트와 리비아는 수십년 이어진 철권 통치가 지난해 무너진 뒤 최근에야 신생 정부가 출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은 아직 군부의 영향력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리비아 신생 정부는 민병대에 치안을 맡길 정도다. 12일 격렬한 반미시위가 발생한 예멘 역시 신정부의 영향력이 약하고 살라피스트는 정당을 결성할 정도로 힘을 얻고 있다. 결국 원리주의자의 득세와 신생 정부의 영향력 부재가, 중동권에 내재된 반미 감정과 맞물릴 경우 폭발력 있는 시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경 원리주의자들이 신생 정부에 이슬람주의 강화를 요구하기 위해 반미 시위를 활용한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1979년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점거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과격 학생 시위대는 테헤란 미 대사관에 난입해 444일 동안 대사관 직원 등 52명을 인질로 잡았다. 미국 정부가 실각한 팔레비 국왕의 입국을 허용한 것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당시 시위대는 아야톨라 호메이니 정권이 자신들의 생각만큼 급진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는데 불만을 품고 미 대사관 점거를 통해 원리주의를 요구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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