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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우리말 돌보기

입력
2012.09.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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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TV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난생 처음 대하는 고유어에 놀라고, 그런 말까지 애써 외운 출연자들의 열의에 또 놀란다. 일상 언어생활에서 너무 오래 쓰이지 않아 사실상 죽어버린 고유어 가운데 되살려 쓸 만한 말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 우리말 살리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시청률이 치솟기를 빌기도 한다. 그런데 매번 참한 말 하나는 기억해 두려고 애써보지만 금세 잊어버린다. 생기가 떨어진 말을 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한다.

■ 대신 한자어든 고유어든, 우리 언어생활을 넉넉하게 했던 말이 생기를 잃지 않도록 돌보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TV 자막에까지 하루 한두 번은 그릇된 표기가 뜰 정도로 우리말과 글 생활이 혼란스럽다.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고 자꾸만 눈과 목에 걸리는 바람에 괴롭다. 식당의 차림표, 광고 전단, 현수막, 심지어 신문에서까지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잦아졌다. 30년 가까운 신문기자 생활이 가져다 준 '직업병'이 점점 더 깊어져 간다.

■ 종업원 용어로 굳어진 '100원이세요'와 함께 가장 듣기 괴로운 말이 '토'다. 우리말 동사에는 '씨름하다'나 '노력하다'처럼 고유어나 한자어 명사에 접미사 '하다'가 붙은 게 많다. '씨름'이나 '노력'만으로 독립된 뜻이 있다. 그러나 '토하다'의 '토(吐)'는 '망하다'의 '망(亡)'과 같은 한자 동사여서 따로 명사로 떼어 쓸 수 없다. 말 배우는 아이라면 몰라도 어른들까지 "토가 나온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정말 토할 것 같다.

■ 아들 녀석 둘 다 어릴 때 그랬다가 여러 번 꾸지람을 듣고 고쳤다. 복잡한 원리나 문법을 따질 것 없이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지적만으로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 애초에 '게우다'는 우리말을 쓰면 그만이고, 굳이 명사로 따로 쓰려면 '구토(嘔吐)'나 '토사물(吐瀉物)'을 쓸 수 있다. 다만 '토사물'은 구토 행위의 결과물이어서 사전 증상에는 쓸 수 없다. 토하기 전이라면 '토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도록 젊은 부모부터 아이들을 가르칠 일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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