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에서 100여Km 떨어진 마을에서 온 로우폼(56)씨의 소원은 두 눈을 똑바로 뜨는 것이다. 온 몸을 뒤덮고 있는 신경섬유종이 눈꺼풀까지 번져 눈이 잘 떠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동생과 어린 조카들도 폼씨와 같은 다발성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다. 이 병은 영화 '엘리펀트맨(1980)'에서 주인공 존 메릭이 흉측한 얼굴을 숨기기 위해 자루를 뒤집어 썼던 희귀 유전병이다.
지난 1일,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에 국제의료NGO인 샘(SAM)복지재단과 새로운 의료선교팀이 간이병원을 열었다. 소아과, 내과, 외과, 치과, 가정의학과, 피부과, 한방 등 7개 분야 17명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58명이 2차에 걸쳐 진료하는 동안 1,500명이 넘는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폼씨가 수술대에 오르자 3명의 외과전문의가 회의를 열었다. 결론은 수술 불가. 종양덩어리 안에 혈관과 신경이 엉켜있고 제거부분이 안구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진의 설명에도 폼씨는 수술실을 떠나지 못했다. 평생에 한번 올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수술을 결정한 의료진은 두 시간에 걸쳐 종양 3개를 떼어내고 종양 무게로 축 늘어진 눈썹을 들어올리는 보정수술을 강행했다. 또 아이들의 등과 손에 난 섬유종을 제거하자 폼씨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최빈국 캄보디아에서의 의료선교는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단비와 같다. 프놈펜 시내에 종합병원이 있지만 진료비가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선교팀은 2차에 걸친 의료봉사 기간중 프놈펜 시내에 있는 한 고아원을 찾았다. 킬링필드라는 잔혹한 시대를 거치며 국민의 18%가 정신적 질병을 앓고 20만 명의 고아가 생산된 캄보디아에서 육체적 질병 치료보다 정신적 치유가 더욱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곳을 운영하는 벡홍탱 목사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 아이들이 바로 캄보디아의 미래라고 역설한다.
"성탄절이 되면 가진 것 없는 아이들이 오히려 동네사람들을 초청해 선물을 나눠줍니다. 작은 축제가 열리는데 성탄절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손꼽아 기다리지요."
탱목사는 또 이들이 공부해 대학에 가고 다시 이 곳을 찾아 아이들을 가르친다며 이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했다. 어둠이 내릴 즈음 아이들이 불러주는 성탄 캐럴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이 순간 캄보디아는 더 이상 킬링필드가 아니었다. 리빙필드, 이 곳에 희망이 싹트고 있다.
프놈펜(캄보디아)=조영호기자 you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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