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토 문제는 내셔널리즘 극복 못해… 확대 안시키는게 낫다"
독도, 위안부 문제로 촉발된 한일 외교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역시 동중국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로 전에 없던 대결 국면에 들어섰다. 한때 '공동체'라는 이상까지 그렸던 한중일 동북아 3국의 영토ㆍ역사 갈등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는 한일관계를 흔들리지 않는 선의의 동반자 사이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이종원(59)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 교수와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ㆍ52) 도쿄대 대학원 교수가 이내영(54)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과 함께 13일 고려대에서 이런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좌담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영토 갈등에서는 현상유지의 중요성을, 역사인식에서는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 이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한 '한일관계를 되묻는다' 심포지엄에서 제기된 '1965년 체제의 진화ㆍ극복'을 위해 한일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내영=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발언 이후 한일관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졌다. 한일간은 역사인식 차이 등으로 이 같은 갈등을 계속 반복해오고 있다.
이종원=역사문제 영토문제 등에서 한일은 지금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동아시아 전체에서 일본의 약화, 중국의 대두, 한국의 성장 등 동아시아 전체 힘의 역학관계의 변화가 있다. 이런 세기적인 전환의 적응 과정에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역사ㆍ영토문제는 지금까지 이중의 힘에 억눌려왔다. 하나는 (그런 문제를 회피하려는)일본의 힘 자체가 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한중일 모두 관료국가나 독재정권, 공산주의 등의 여건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만이나 주장이 적극적으로 표출이 안 됐다는 점이다.
그런 현상이 바뀌고 있다. 위안부 하나만 보더라도, 그것을 일본이 했기 때문에 문제라든가, 한일간만의 문제라거나 하는 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 전체가 보편적인, 특히 현재의 지역내 인권 문제와 연동해서 접근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와 올해 한국에서는 사법부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합법적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지배 과정에서 생긴 피해를 배상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한국 정부 역시 그런 배상을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정면으로 묻지 않았던 1965년 한일협정 체제를 기본으로 삼았던 지금까지의 한일관계가 다른 단계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 일본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전반적으로 국력이 약해지고 있는 일본 사회는 방어기제가 작동해 단계적으로 보수우경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내영=2010년에 한일 학자의 강제병합조약 무효 공동선언처럼 65년 한일협정의 틀을 뛰어 넘는 합의가 나오는 등 과거사 인식 차이를 좁히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최근 일본의 지도자들은 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등 과거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이런 문제를 촉발한 측면도 없지 않다. 양국 정부의 잘못으로 역사인식에서 접근하려는 한일 시민사회의 노력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기미야=일본의 논리는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한일 과거사 문제는 65년에 다 끝났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도의적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법적으로 져야 할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 5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결국 65년 체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데, 되도록 65년 체제라는 토대 위에서 한중일 국내 구조의 변화, 동아시아 힘의 변화에 따라 현실에 맞게 진화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협정 때 논의하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적어도 정치적으로 한일 양국에서 다루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영토문제의 경우 한국은 그것을 역사문제로 보고 일본은 그냥 영토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어서 근본적인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이종원=1965년 체제를 진화시켜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일본이 못해왔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일협정이 불충분했고 그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논의는 일본에서도 90년대에 제기됐다. 95년 무라야마 담화, 98년 한일파트너십 선언 등이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한국 사법부가 식민지배 원천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데 대해 한국 정부가 어떤 외교적인 자세를 보여줄지, 이에 대해 일본은 어떻게 반응할지 관심이다.
이내영=한일관계는 단기간에는 경색 국면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현 노다 정권에 역사인식의 전환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외교적인 수완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기미야=일본이 해온 것을 전부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일본에서는 우리도 조금은 했지 않느냐, 그런데 한국은 아무리 해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 한일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결국 한국은 일본과 함께 가지 않으려는 거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다. 이번 이 대통령 독도 방문이나 일왕 사죄 발언 같은 걸 보면서, 그래도 어느 정도는 했는데 이렇게 나온다면 양보할 수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종원=일본이 노력한 부분이 없는 건 물론 아니다. 무라야마 담화,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 2010년의 간 담화, 문화재 반환 등도 그렇고, 1990년대 들어와서 일본 외무성 등은 한일협정을 보완하기 위해 거기에서 제외된 3가지 주요 문제(위안부, 사할린 한인, 징용 피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했다.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있지만 그런 해법에는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가 법적으로는 식민지 지배에 책임이 없다는 것을 깔고 있었다. 그래서 시민단체를 앞세운 인도적 지원으로 해결책이 나온 것이다. 그것이 일본의 한계다. 그래서는 노력 자체가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고 그 과정에 반발하는 일본 국내 우파들의 망언이 나오면 오히려 그것만 증폭돼 전해지는 거다.
기미야=일본 정부가 확실하게 그런 것을 하겠다고 하면 좋겠지만 국내에서 그것을 막으려는 세력이 있고 그걸 균형 맞추려면 곤란한 상황이 되는 것이 20년간 이어져 왔다.
이종원='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한다'는 1998년 한일 정상 파트너십 선언의 문구가 중요하다. 일본은 이를 두고 미래를 지향한다면서 왜 과거를 이야기하느냐고 하는데, 과거를 직시한다는 것은 미래로 가기 위한 토대이다. 한일협정을 보완할 것은 보완해가면서 양측이 가까워지고 미래로 가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이 인식하는 것처럼 (독도 같은)영토문제는 역사문제와 결부된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차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 이번 한일관계 악화는 역사인식이나 영토문제를 갖고 정권 상층부가 부딪쳤으니 아마도 최근 몇 십 년 간 없었던 큰 마찰이다. 그런데 의외로 사회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게 현재 한일관계의 현재 위상이다. 하지만 이런 균열이 반복되는 것은 일본의 대한(對韓) 여론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일본은 사회 전체가 우경화했다기보다 정치권이나 중국 위협론 때문에 정치전략가들이 훨씬 우경화해 있는 상황이다. 일본 사회가 아직은 극단적인 보수화로 안 간 것은 국민이 현명한 부분도 있고 한일이 복합적인 관계를 쌓아온 결과이기도 하다. 정치권의 돌발적인 우경화 같은 것은 다방면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가야 할 것이다.
이내영=한일 국민 사이의 적대감정은 상당히 없어졌다. 특히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런 토대가 두텁다고 느꼈다. 토대가 튼튼하니까 냉각기를 가지면 다시 본궤도로 갈 수 있다고 본다.
기미야=하지만 정치가 문화나 사회에 개입하지 않으면 한일관계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은 역사문제는 과거의 문제이고, 전략적인 관계는 미래지향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역사문제를 정책에 포함시켜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미래지향적인 관계도 그렇게 해야 만들 수 있다.
이종원=한국이 앞으로 정책을 구상할 때는 내셔널리즘(민족ㆍ국가주의)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내셔널리즘은 상호작용하기 쉽다. 서로 자극하면서 커지는 것이다. 영토문제를 자꾸 부각시키면 특히 그렇다. 영토문제는 현상을 관리하면서 평화적 외교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역사문제는 지금까지 내셔널리즘의 문제라고 생각해왔지만 위안부 등의 문제제기 이후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도 대응하기 쉬운 점이 있다. 1965년 체제의 보완이든 재편성이던 서로 내셔널리즘보다 보편적인 인권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한국이 내셔널리즘에 기반해서 일본을 비판하면 그렇지 않아도 상처받고 있는 일본은 반발만 하고 나설 수 있다. 한국은 게임을 내셔널리즘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그것을 넘는 틀로 가져가야 한다. 그게 현명한 길이다. 그런 저력은 한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국 사회 내부에도 있다.
이내영=독도 영유권 문제는 쟁점이 안 되도록 하는 게 현명하다고 했는데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는 해결책은 불가능해 보인다.
기미야=해결 불가능한 문제다. 하지만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한국이다. 현상유지하려면 그다지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는 것이 낫다.
이종원=유럽을 보면 제2차 대전 이후 지도가 크게 변했다. 독일은 전전 영토의 20%를 잃었다. 헬싱키 선언(1975년)의 토대는 국경선에 불만이 있어도 현상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모두 불만이 있지만 그걸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며 서유럽 통일을 일궈 내고 유럽통합까지 간 것이다. 현상유지는 그런 점에서 지혜이고 결단이다. 우려되는 것은 노다 일본 총리가 독도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공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소를 하더라도 한국이 대응하지 않으면 효과는 없지만, 문제는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테이블 아래에 있는 이 사안이 이후에는 어떤 총리가 나와도 국제사회에 계속 문제제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돼 버린다는 점이다. 당연히 한국은 그때마다 반발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양국 관계가 어떻게 될지 우려된다. 이런 점까지 감안해서 현상유지를 하고, 내셔널리즘의 상호작용이 생기지 않게 일본도, 한국도 노력해야 한다.
이내영=독도문제만이 아니라 센카쿠나 남중국해 등에서 동아시아 영토갈등이 다면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한중일이 해온 협력 노력과 반대되는 것이다. 영토문제만 보면 어려울 것 같지만 협력의 필요성을 의식적으로 강조한다면 이런 갈등을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종원=중일 영토문제는 낙관할 수 없다. 센카쿠는 일본이 유리한 입장이지만 국유화 이후중국의 반발이 예상보다 크다. 권력교체기라는 점도 작용하지만 그 동안 양국이 암묵적으로 동의해온 현상유지 방침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는 국내 정치 역학에 따라 할 수 없이 국유화를 했더라도 후쿠다 정권에서 나왔던 중일 자원공동 개발 구상처럼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내영=영토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중국 정부가 한국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일 갈등이 한일 연대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종원=삼국지 같은 합종연횡 현상이 있긴 하지만 한국은 그런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내영=영토문제로 갈등하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본 정부가 알아야 한다. 그런 갈등을 뛰어넘는 미래지향적인 아이디어를 관련국의 지도자들이 내야 할 시점이다.
이종원=여전히 긴장의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동아시아에서도 국경의 의미가 많이 변했다.국경은 전쟁을 할 때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지만 평화시기에는 교류와 공존의 공간이다. 일본으로 보면 규슈의 후쿠오카 같은 곳이 일종의 국경 도시다. 여기는 일본의 경기 부침보다 한국 중국의 경기 동향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 독도나 센카쿠에서도 군사 충돌이 있다면 살벌해지겠지만 원래는 어민들이 조업을 하는 곳이다. 국경이 갖는 그런 의미 변화를 비전으로 삼는 것도 필요하다. 안정과 평화야말로 '윈윈'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정리=김범수기자 bskim@hk.co.kr
■ 새로운 한일관계 위한 주목할 만한 주장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해 13일 고려대에서 열린 '한일관계를 되묻는다' 국제심포지엄에서는 화해와 대결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한일관계 모색을 위한 주목할만한 논문들이 여러 편 발표됐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지금까지 한일 과거사 문제를 논의하는 기본 틀이 돼온 1965년 한일협정에서 식민지 지배 배상 문제가 어떻게 완전히 배제되었는가를 재조명한 오타 오사무(太田修) 도시샤(同志社)대 교수와 이동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의 논문이다.
식민지 '해방'이 아니라 합법적인 일본 제국의 영토를 강화조약에 따라 '분리'한다고 인식한 일본 정부는 애초부터 강점에 따른 배상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뿐 아니라 한일협정 체결을 위한 전단계로 일본과 협의(1952년 한일회담 기본관계위원회)에 나선 이승만 정부조차도 식민지 배상을 요구할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을 최근 일본에서 공개된 외교사료를 통해 입증했다. 오타 교수는 그래서 한일 양국 정부를 '식민지주의의 공범'이라고 불렀다. 이 교수는 그렇게 만들어진 한일협정으로 생겨난 '한일 과거사의 결락은 지금도 생생하고, 과거 청산 없는 미래 지향은 공허할 뿐'이라며 '한일 과거사 처리의 원점은 어쩌면 지금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일 과거사 문제를 근본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이런 주장이 과거와 달리 공허하지 않은 이유는 이날 발표된 김창록 경북대 교수의 논문에서 잘 드러난다. 김 교수는 한일 정부의 정치적인 타협에 불과한 한일협정이 '마침내 수명을 다했다'고 지적했다. 그 동안 위안부나 강제 피해자들의 한국 정부를 향한 대책 요구를 한일협정 등을 근거로 외면해온 사법부가 지난해 헌법재판소 결정, 지난 5월 대법원 판결에서 재협상의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특히 '식민지 책임 일반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선언한' 대법원 판결에 주목해 '65년 체제는 더 이상 법적 구조로서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됐으므로 새로운 법적 구조를 구축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한일협정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새로운 협상에 나서라는 말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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