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가 12일 하우스푸어 대책의 일환으로 '세일 앤드 리스백(sale and lease backㆍ매각 후 재임대)' 개념의 상품을 시중은행 최초로 내놨다. 하지만 실질적인 수혜자가 수백 명 남짓에 불과한데다, 적격대출 등 기존 채무재조정 상품과 큰 차별성이 없어 근본적인 하우스푸어 처방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금융지주에 따르면 이달 말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상환하기 어려운 하우스푸어를 대상으로 우리은행이 세일 앤드 리스백 상품을 출시한다. 이 상품은 하우스푸어가 신탁회사를 통해 주택 관리ㆍ처분권을 은행에 넘긴 뒤 '후순위 수익증권'(집이 팔렸을 때 대출금을 갚고 남는 대금에 대한 권리)을 갖고 최장 5년 동안 임대료를 내고 집을 빌려 쓰는 형태다. 즉, 하우스푸어 입장에선 기존 대출원리금 상환 부담이 유예되고 14~16%에 달하는 고금리 연체이자 대신 연 5% 수준의 임대료만 내면 되는 셈이다.
다만, 임대료를 6개월 가량 연체하거나 신탁 만료 때에도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해당 주택은 대출자 동의 없이 매각된다. 집이 팔리면 대출자는 매각대금에서 대출금과 기존 연체이자 등을 은행에 내고 나머지를 갖게 된다. 당장 고금리 연체에 시달리는 하우스푸어 입장에선 반가운 소식일 수 있으나 집값이 오르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처방이 되긴 어렵다.
무엇보다 대상자가 제한적이다. 다른 금융회사를 이용하지 않는 우리은행 대출자 가운데 ▦1주택을 가진 실거주자 ▦3개월 이상 연체되지 않은 고객 ▦임대료를 낼 수 있다는 증명 ▦다른 채무재조정 프로그램에 참여했거나 투기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한 고객 제외 ▦원리금 장기 연체자 제외 등으로 조건을 한정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대상자는 우리은행 주택담보 대출(약 46조원) 가운데 0.19%인 700가구(900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생색내기용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리스크 문제로 자격요건이 너무 까다롭다 보니 수혜자 규모가 적어 하우스푸어 해결책이라고 보기 힘든 상품이 출시됐다"고 지적했다.
주택 명의이전도 대상자에겐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주택 소유욕이 높은 베이비부머 등 중ㆍ장년층이 역모기지론(주택담보노후연금) 상품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도 명의 상실이다. 때문에 최장 30년까지 대출이 가능하면서도 금리는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0.5%포인트 가량 저렴한 적격대출 등 고금리를 갈아타는 대출상품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 많다. 이에 대해 우리금융 관계자는 "은행의 신탁자산에 속하게 되면 타금융권의 가압류 등 채권추심에서 벗어날 수 있고 채무자에서도 일시적으로 벗어나기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될 위험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신탁이 끝난 뒤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주택을 처분하는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만일 집값이 계속 하락해 대출금보다 더 떨어진 경우 그 부족분을 누가 부담할 지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또 집 매각 과정에서의 세금을 은행과 집주인 중 누가 낼지도 결정해야 한다.
금융권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도 여전하다. 지금처럼 경제 행위자가 책임지지 않는 혜택을 자꾸 허용할 경우 집이 없는 사람, 신용대출이나 학자금대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낮은 이자로 대출상환 연장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권이 시장실패 부분까지 책임지다 보면 그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알 수가 없다"며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비롯한 이익집단에서 모럴해저드를 일으키는 각종 정책을 요구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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