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없는 오늘은 가볍고, 현재를 외면한 전통은 외롭다. 선조들이 구축한 문화유산을 오늘의 눈으로 꾸미고 새롭게 해석해보려는 두 전시가 열리고 있다. 400년 넘는 역사의 현장인 덕수궁이 최첨단 현대미술로 단장되고, 수 백 년 기술을 지켜온 장인들은 공예 디자이너들과 만나 현대적인 개념의 상품을 탄생시켰다.
19일부터 12월 2일까지 열리는 ‘덕수궁 프로젝트’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을 무대로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자리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덕수궁은 아관파천, 을사늑약, 한일병합 등과 같은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지켜본 현장이다. 1611년 광해군이 ‘경운궁’으로 명명했지만 1907년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난 뒤 이 곳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서도호 정영두 이수경 임항택 김영석 정서영 류한길 류재하 하지훈 성기완 최승훈 박선민 등 현대 미술계의 작가, 디자이너, 무용가, 음악가 등 12명은 중화전 함녕전 덕홍전 석어당 등 덕수궁의 6개 전각과 후원, 덕수궁미술관을 누비며 현대 예술을 선보인다.
설치예술가 서도호씨는 고종의 침전(寢殿)인 함녕전을 주제로 했다. 국가 존망의 위기상황에서 임금의 신분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고종의 내적 갈등과 불안을 그려낸다. 명성황후와 엄귀비를 잃고 나라까지 빼앗긴 임금의 외로움을 담았다. 함녕전 동(東)온돌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마름꽃 무늬가 있는 능화지(菱花紙)로 깔끔하게 도배했다. 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덕수궁미술관에서 보여주고, 함녕전에서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을 선보인다. 고종의 침전에 보료 3채를 깔았다는 궁녀들의 증언을 영감의 출발점으로 삼아 그곳에서 일어났을 일을 퍼포먼스로 재현했다.
1900년께 러시아 건축가 세레딘 사바친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덕수궁 정자인 정관헌은 개념미술가 정서영이 꾸몄다. 정관헌 내부에 있는 가구들 사이로 다각형의 거울조각을 끼워 넣기도 하고, 이 가구들을 덕수궁미술관 내부로 이전한 후 빈 자리에서 행위예술이 펼쳐진다. 전시회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궁궐과 현대 미술을 접목시킨 것은 첫 시도”라며 “덕수궁이라는 공간에 현대작품이 스며들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다양한 시간의 차원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13~17일 삼성동 코엑스 특별관에서 ‘진변진용’(眞變眞用ㆍ예술적 가치는 변하지 않지만 생활 속 명품으로 무한변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명장들의 작품)이라는 주제로 여는‘2012 전통공예 미래전’에서는 전통 장인들과 현대 디자이너들의 합작품이 나온다.
갓일ㆍ자수장ㆍ참선장ㆍ목조각장ㆍ소목장ㆍ나전장ㆍ장도장ㆍ유기장 등 8종목 16명의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와 아트디렉터 최웅철, 디자이너 박재우, 임태희, 전범진,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신경옥 등 6명이 참여했다.
5월부터 디자이너들이 직접 공방을 다니며 이수자들과 소통하고 전통공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섰다. 전통적 기술에 현대적 디자인을 더해 일상생활에 쓰일 수 있는 공예품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 이번 전시에서는 부처의 옷자락을 형상화 한 목조각, 나전으로 만든 벽걸이 함, 소목가구와 나전으로 만든 놀이기구 ‘요요’까지 14종 36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회를 총괄 기획한 최웅철씨는 “우리의 예술적 가치와 장인의 혼을 담아 이 시대 생활 속 명품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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