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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 김기덕 감독의 수상 소식에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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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칼럼] 김기덕 감독의 수상 소식에 붙여

입력
2012.09.1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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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우리 사회에 몇 가지 외면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진다. 예술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고달픈 일이 되어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김 감독은 어떻게 그 허다한 어려움들을 뚫고 나가 ‘베니스의 영예’를 안을 수 있었는가. 초등학교 졸업이 공식 학력의 전부라는 그를 독창적 예술가로 키운 것은 무엇인가. 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예술영화와 독립영화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은 김기덕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제2, 제3의 김기덕, 다른 수많은 영화예술인들이 김기덕 못지않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자면 사회가 신경 써야 할 일은 무엇이고 정책, 시장, 제도, 문화가 해결해주어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 사회만이 아니다. 영화를 키우는 것은 결국은 관객이다. ‘관객 1,000만 시대’의 영화관을 드나드는 당신과 나, 우리들 관객 모두에게 김기덕의 ‘황금사자상’은 무슨 질문을 던지고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가.

이런 질문들 앞에서 우리가 냉소적이고 문제회피적인 답변을 듣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이런 식의 답변들이 가능하다. 예술가를 키우는 것은 돈이 아니라 고난과 굶주림, 광기와 집념 아니던가? 예술이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에 예술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집념 자체가 광기다. 그 광기의 예술가는 카프카의 처럼 쫄쫄 굶는 것이 옳다. 햇살과 바람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나는 바람을 먹는다/ 돌을 먹는다/ 흙을 먹는다’고 읊었던 시인 랭보의 노래를 기억하라. 남들이 먹지 않고 먹지 못하는 것으로 배를 채우고 그 먹을 수 없는 것들로 축제를 벌이는 것이 예술가 아니던가. 사회가 할 일이 있다고? 꿈 깨라, 궁핍한 예술가여. 사회는 독창적 예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예술은 불온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시장? 시장이 예술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일이 이 땅의 시장바닥에서 가능할 것 같은가. 시장은 돈에만 반응하고 돈 되는 것에만 투자한다. 예술은 오늘날 ‘돈 안 되는 것’의 대명사 아닌가. 관객? 지금의 관객은 유행 좇아 다니고 트렌디한 것에 쏠리고 재미와 오락에 중독된 지 오래다. 그런데 예술은 유행을 거부하고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런 예술을 좋아할 관객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이 칼럼의 독자들은 그러나 이런 씨니시즘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반론은 대체로 이런 노선을 따를 것이 분명하다. 문명의 아침이 열린 이후 지금까지 인간이 자랑할만한 가장 창조적인 성취들을 내놓은 것은 과학과 예술 두 분야 아닌가. 문자를 발명하고 제도를 만들고 국가를 구성하기 훨씬 전에, 지금부터 3만 5,000년 전부터 동굴벽에 그림을 그리고 장신구를 만들고 상징적 조형물들로 무덤을 가꾼 동물이 인간이다. ‘예술’은 진화과정의 우연한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진화를 가능하게 하고 진화를 추동하고 진화의 방향을 안내한 힘이다. 그 예술이 정지되거나 예술창조의 능력이 쇠퇴한다는 것은 진화의 정지나 다름없다. 사회가 예술을 높이 평가하고 교육이 예술에 투자하는 것은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의 핵심부에 예술이 있다. 예술행위를 빼고 나면 인간에게 뭐가 남을 것인가.

예술은 과학과 반대의 충동을 따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방법적으로 예술과 과학의 실천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과학적 발견들의 뿌리지점을 보라. 그 발견들을 가능하게 한 것은 ‘상상력’이라는 창조의 동력이며, 이 차원에서 예술의 상상력과 과학의 상상력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발견들을 가능하게 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 상상력은 시적 은유적 상상력이고 예술적 상상력이다.

지금은 과학의 시대다. 그런데 그 과학의 시대가 예술적 상상력을 우습게 알아도 된다고?

시장이 예술을 홀대하고 예술을 말라죽게 한다면, 그 시장은 제 무덤을 파는 것이다. 창조성의 뿌리가 말라버린 곳에서는 어떤 대중예술도 가능하지 않다. 교육은? 한국에서처럼 예술교육을 변두리로 내몰고 아이들을 오로지 시험준비에만 매달리게 하는 교육은 창조력을 죽이는 교육, 그러므로 가장 반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 교육이 된다. 김기덕의 수상 소식은 참 중요한 얘기들을 들려준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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