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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대한민국과 생물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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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대한민국과 생물학적 상상력

입력
2012.09.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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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逆說)로 글을 시작해본다. 엠비 가카 치세 5년, 이제야 대한민국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국가가 되기 위한 태세를 갖춰간다. 담배 피는 놈년들 설 자리 없게 하고, 술먹고 개기는 주폭도 조지고, 포르노는 '분서갱유', 흉악범은 곧 목매달아 죽일 모양이다. 몸소 도덕적으로 완벽하신 가카의 밝은 덕이 이제야 전 백성에게 참된 삶의 길을 제시하니 서생은 도무지 몸둘바를 모르겠다. 어진 신하들이 불심검문제를 부활하게 하더니 급기야 성범죄자에 대한 물리적 거세도 입법 발의했다. 대한민국은 요순 같은 이상국가가 돼간다.

남들은 '고환법'을 비웃지만 문화적 상상력을 동원하면, 자르는 게 진리다. 특히 '고환법'의 집행에 대해서 새누리당의 의원들에게 한 가지 권고하고 싶다. 반드시 광장에서 공개집행하게 하라. 한국 남성성과 가부장제의 메카니즘을 볼 때, 이게 가장 확실한 퍼포먼스가 될 것이다. 거세 공포는 단지 프로이디즘의 신화가 아니며, 수컷들 거세공포의 본령은 결코 화학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히 물리적ㆍ외과적인 데 있다. 불까기 퍼포먼스는 성폭력 예방 뿐 아니라 한국식 가부장제와 남성중심문화에 치명상을 입힐지 모른다. 마치 길로틴 위에서 잘린 루이 16세의 목이 절대왕정의 문화적ㆍ정치적 역능을 거세했듯이.

화학적ㆍ생물학적 처치는 범죄예방과 국민보건 향상을 위해 일상화될 필요가 있다. 엄청난 성욕에 시달리는 10~20대 남성들에게는 일괄적으로 테스테스테론 억제 주사를 처방하라. 학교ㆍ군대 급식에 약을 타도 좋겠다. 술 먹고 담배 피는 녀석들은 중독의 원인이 되는 뇌부위를 절개 수술받게 하라.

일련의 흉악범죄 때문에 국민적 분노가 들끓는다. 분명 양형제도는 개선될 필요가 있겠다. 또한 성매매와 성폭력이 만연한 한국사회의 젠더구조가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근본적으로 고쳐졌으면 하는 희망이다.

그러나 만연한 성폭력은 총체적인 문제이다. 개인의 성욕 탓이거나 포르노나 단지 환경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적 분노에 편승해 헌법이나 이성의 범위를 넘는 수준의 대책 아닌 대책만 속출한다. 거세든 사형이든 그것은 인간의 성과 육체에 가해진 폭력적 범죄를 또다른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위험한 사고방식에 근거한다.

또 그것은 인간에 대한 지극히 요소론적이고 생물학적인 접근에 근거한다. 인간을 평등한 이성과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생각하지 못하며, 사고와 행위를 호르몬과 유전자로 환원하는 생물학주의와 유관한 것으로 본다. 특히 미국 등에서 첨단학문으로 포장된 뇌과학과 생화학적 인간학은 사회문제를 '사회적 수준'에서 사고할 힘이 없는 우파와 자본주의자들의 구미에 잘 맞는다. 그에 따르면 불행이든 범죄든 오로지 개별자의 책임이며, 유전자나 호르몬 수준에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 과학 아닌 과학은 신자유주의 문화의 일환이며 정치적 무의식의 근저를 이룬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을 밀고 나가면 종북주의자들이나 '좌빨'들에게도 뇌 절제술이나 약물 요법이 강요될 수도 있겠다. 신자유주의와 생체 파시즘이 조우할 수 있다는 것, 일제나 나치의 우생학을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지 않나.

사형 실시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이미 사형은 범죄 예방이나 '더 안전한 사회'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밝혀져 있다. 사형 집행을 잘 하는 미국이나 북한이 안전한 나라인가. 적어도 제대로된 '문명국'에서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의원에게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박정희 집권 시절에 414명이 법의 이름으로 사형 당했다. 거기에는 인혁당 사람들 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한 '간첩'들도 있고 법이 오판한 가련한 사형수도 있다. 그러니 온 국민이 다 사형을 외치더라도 박 후보는 반대해야 한다. 그래야 소위 '대통합'이며, 합법ㆍ비합법적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무지막지한 아버지를 극복하는 것 아닌가.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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