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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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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

입력
2012.09.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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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로 커다란 분홍리본꽃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게 보인다. 아뿔싸. 또 대형화환이다. 새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누군가 대형화환을 보내온 것이다. 전시장 마당 한편에 세우면, 마당이 꽉 차는 느낌이다. 마당은 비어있는 그 자체로가 쓰임인데.

그렇다고 대문 입구에 세울 수는 없다. 류가헌은 집들이 좁은 골목으로 올망졸망 이어진 한옥동네 막다른 골목 끝에 자리해 있다. 대문을 열면 앞 집 대문 문턱이 한 걸음에 닿을 정도다. 크기가 2m가 넘고 뾰족뾰족한 플라스틱 이파리들로 가장자리를 두른 대형화환은 사람들이 오갈 때 마다 두 팔을 활짝 벌려 골목을 막아서는 무뢰배 같다. 게다가 플라스틱 조화를 생화와 얼버무린 조악함과 앞만 치장하고 뒤태는 얼기설기 마무리한 어디에도 '화환'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에 값하는 미의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전시 제목이나 보낸 이의 이름과 신분이 적힌 대형리본은 또 어떠한가. 그 자체로 허례허식, 과장된 치레의 상징 같다. 때론 전시 제목이 잘 못 적혀있어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도 한다. 전에 선대에서부터 한지를 만들며 친분을 이어 온 두 원로 장인이 전시를 연 적이 있다. 전시 제목이 '천년 한지, 백년 인연'이었는데, 리본에 적힌 전시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청년 한지, 백년 이년'. 아프리카 쓰레기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노래로 세상을 감동시켜 화제가 된 지라니합창단을 주제로 사진전이 열렸을 때도 '지란이합창단'이라고 오자를 매단 리본이 배달되어져왔다. 전화로 받아 적는 과정에서 그리 되었을 터이니, 화원만 탓할 수도 없다. 전화 한 통으로 꽃을 주문배달 시키는 대신 몸소 화원에 들러 꽃을 고르고 리본에 글이 적히는 과정을 지켜 본 정성이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해프닝이다.

대형화환만 문제는 아니다. 전시 축하의 공식처럼 되어버린 양난들. 이동하기 쉽게, 대부분 화분 안이 스티로폼으로 채워져 있다. 전시장에서 일이주일만 지나면, 꽃에 점이 생기는 등 병이 들고 물을 주어도 이내 시들해진다. 호접란 하나가 저리 꽃을 피우는 데 수년의 시간과 손길이 간다고 들었다. 그 꽃이 전시장에서 잠깐 구실을 하고는 폐기되는 것이다. '화무십일홍'이라지만 꽃의 화려한 모양과 색깔이, 검은 글씨로 쓰인 리본의 '직위' 보다 눈길을 덜 받는다. 작은 동양란들 역시 받는 이의 취향에 대한 배려라곤 없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 전국적으로 각종 행사에서 사용되고 버려지는 화환이 연간 700만 개로 약 7,000억 원대의 경제적 낭비를 불러오고 있다고 한다. 대안은 없는 것일까. 얼마 전에는 화환대신 '00미'라는 이름의 쌀이 보내져왔다. 판매된 쌀의 일부가 불우이웃돕기에 쓰이고 우리 농가도 살린다니, 아이디어가 장하다. 하지만 역시 대형화환의 문제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실제의 쌀은 교환용 쿠폰으로 오는데, 그 kg에 해당하는 크기의 쌀 포대 모형이 층층이 배달되어져 온 것이다. 대형화환의 명색을 유지코자, 이번엔 사진으로 화환이 프린트된 인쇄물과 화환구조물이 한 세트다. 전시가 끝나면 대형쓰레기봉투 하나로도 모자란 쓰레기가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화훼업자들이 재사용을 막기 위해 낸 아이디어일지라도, 현재의 화환문화에 대한 고민과 잇닿아 있는 것은 '신화환'이다. 커다란 화환이 실은 작은 꽃다발 묶음으로 되어 있어서, 행사가 끝나면 분해해 하객들에게 꽃을 나눠줄 수 있도록 제작됐다. 전시장이나 작가 입장에서 보면 꽃도 나누고, 쓰레기도 분산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화환 문제로 곤란을 겪다보니, 막상 다른 전시장에서 지인의 전시가 열리면 고민이 앞선다.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하고는 싶은데 화환과 양난화분은 꺼려져서 생각해 낸 것이 '꽃봉투'였다. 꽃그림이 그려진 봉투에 양난화분 하나 값 정도의 금액을 넣고 이렇게 썼다. '전시 축하합니다. 꽃 대신 꽃봉투~'봉투를 내밀고 받는 동안은 어색했으나, "뒤풀이에 보태셔요."하니, 작가도 민망한 표정을 뒤로하고 밝게 웃는다.

아무리 크고 화려할지라도 화환이 반갑겠는가, 사람이 반갑겠는가.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란 노래 제목이 이 경우에도 해당되는 게 아닐까. 꽃봉투가 들려있지 않아도 손 내밀어 꼭 잡아 쥐면 그 맞잡은 손과 마주친 눈길 사이에서 꽃이 핀다.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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