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꼭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누가 대선 무대의 진짜 주인공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레이스에 출전하는 선수 명단이 짜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를 내세웠지만 박 후보에 맞설 대항마는 정해지지 않았다. 문재인 의원 등 민주통합당 후보들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중에 누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될지 알 수 없다.
안 원장은 아직까지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랭킹 1, 2위를 다투는 선수의 출전 여부부터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대선 구도는 고체가 아닌 액체 상태인 셈이다. 때문에 누가 금메달을 딸지 점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선거는 예술(art)이고, 과학(science)이라고 한다. 최근 여론조사 기술이 발달하면서 선거는 과학이란 말이 설득력을 가졌다. 하지만 올해 선거는 과학의 영역을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 여야 후보의 접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여론조사 정확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대선 전날까지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5년 전과 달리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정 전화가 크게 줄어들고 스마트폰 비율이 급증했다. 이에 따라 여론조사에 휴대폰 사용 응답자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게 바람직한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예측 가능'을 목표로 하는 과학의 성격이 줄어드는 선거가 되는 것이다. 반면 올해 대선은 '예술'이 될 공산이 크다. 막판 야권 후보단일화와 일부 후보 사퇴 등 드라마가 연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예측 가능한 정치'가 바람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안개 구도와 불가측의 정치는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좀 더 낙관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예측이 불가능한, 접전 판세는 오히려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뭔 소린가"라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인사 실패 등이 거론됐다. 이 같은 실패의 요인은 우선 대선 때 너무 쉽게, 큰 차이로 승리한 데서 찾을 수 있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는 48.67%((1,149만표)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26.14%)보다 두 배 가량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압승 결과에 취해 임기 초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이 이뤄졌다.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작품은 '강부자'(강남 부동산 부자) 내각과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내각 구성이었다. 이어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을 안이하게 하다가 촛불 시위로 역풍을 맞았고, 그 뒤에도 4대강 사업을 강행하다가 소통 부재라는 비판을 받았다.
득표율 착시 현상이 낳은 결과이다. 이 대통령은 가장 많은 득표 차이로 승리했다. 하지만 지난 대선 때는 투표 기권자가 많았다는 점을 간과했다. 전체 유권자(3,765만명)를 기준으로 할 경우 이 대통령의 실제 득표율은 30.52%에 불과했다. 10명 중 3명의 지지를 받은 셈인데 이 후보 진영은 절반 이상 지지를 받았다고 착각했다.
전체 유권자 대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1987년 대선 이후 가장 낮았다. 15대 대선 당시에도 전체 유권자 대비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은 31.98%로 이 후보보다 높았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16대 대선 때 낙선한 이회창 후보가 얻었던 1,144만 표보다 불과 5만 표 더 얻었을 뿐이었다.
득표율과 국정운영의 이 같은 관계를 고려하면 시소게임은 오히려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박빙 승부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유력 후보는 더 낮은 자세를 취하게 된다. 또 당선 뒤에도 국민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국정을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세론' 이나 '안철수 ∙문재인 태풍' 등은 오만을 낳고 독이 될 수 있지만 접전 상황은 이런 부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안개 속 대선 구도가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이 같은 '접전의 정치학' 때문이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