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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의 별별이야기] 굿바이 암스트롱? 굿바이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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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의 별별이야기] 굿바이 암스트롱? 굿바이 늑대!

입력
2012.09.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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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왼발이 달 표면에 닿으면서 인류는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게 됐다.여섯 차례의 아폴로 우주선이 달 표면에 착륙하는데 성공했고 모두 12명이 달에 갔다 왔다. 72년 아폴로 17호의 우주비행사 2명이 마지막으로 달 표면을 밟은 후 그 곳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지난 8월 25일 닐 암스트롱이 죽었고 이젠 오직 8명만이 남았다.

어떤 추억은 그 느낌도 함께 몰고 찾아오곤 한다. 내게도 첫 키스의 설렘보다 더 강렬한 떨림으로 다가오는 그런 추억이 있다. 달 표면에 두 번째로 발자국을 남겼던 또 다른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인 버즈 올드린이 찍은 자신의 발자국 사진. 그리고 암스트롱이 찍은 달 표면에 우뚝 서 있는 올드린의 사진. 이 두 장의 사진을 다시 보거나 떠올릴 때면 지금도 어린 시절 그 사진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던 그 느낌이 재현되곤 한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사건은 어린 내겐 세상이 진동하는 충격이었다. 다른 많은 아폴로 키드처럼 나도 그런 꿈을 쫓아가다보니 과학자가 됐다.

문득 '광수 생각'이란 만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했는데 이상한 것이 달 표면에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토끼 똥이었다. 달에는 정말로 방아를 찍고 있는 토끼가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암스트롱은 놀란 가슴을 다스리고 지구로 돌아왔다. 장면은 다시 지구. 이곳 저곳에서 열렸던 환영회와 강연회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암스트롱. 가면을 벗어 던지고 당근 한 개를 입에 넣고 하는 말. "지구로 오기를 정말 잘했어." 암스트롱은 달에 남고 토끼가 지구로 와서 암스트롱의 가면을 쓰고 그처럼 행세했던 것이었다.

암스트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추억의 아폴로 11호 사진 두 장이 아니라 우습게도 이 만화였다. 순간적으로 토끼가 죽은 것일까 암스트롱이 죽은 것일까 이런 엉뚱한 생각이 뒤따랐다. 그가 아직도 달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희망 섞인 상상도 떠올렸다. 아마도 아폴로 세대를 살아온 내겐 그가 끝끝내 보내기 싫은 상징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암스트롱의 탈을 쓰고 일생을 살았던 달에서 온 토끼가 이제는 가면을 벗고 자신의 모습으로 평안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유쾌하지만 짠한 나홀로 상상 놀이였다. 암스트롱의 장례식은 비공개로 치러질 것이고 그의 유해는 바다에 안장될 것이라는 전언이다. 암스트롱의 명복을 빈다.

대선 정국이다 보니 습관처럼 또 다른 공상이 머릿속을 치고 들어온다. 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에는 양들이 너무 많아졌다. 토끼도 너무 많아졌다. 어제까지는 늑대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양이라고 우긴다. 토끼라고 우긴다. 뭐든 온화한 동물의 탈을 하나씩 뒤집어쓰고는 막무가내로 원래 그랬다고 우긴다. 아직 꼬리도 이빨도 채 감추지 못했으면서 온순한 표정을 짓고 돌아다니면서 자기를 따르지 않으면 국민대통합은 없다고 협박을 한다. 늑대 친구들이 일을 저지르면 자기 같은 순한 양의 친구가 아니라고 잡아뗀다.

할 일도 많고 먹고 살기도 바쁜데 국민들은 이번 대선에서는 졸지에 늑대 감별사가 되도록 강요 받고 있다. 정작 대선 후보들의 정책과 사람 됨됨이를 따져보기에도 골치 아프고 힘든데 본선에 앞서서 늑대를 감별하는 예선도 몸소 떠맡으라고 한다. 부당한 일이다. 이런 일은 언론에서 마땅히 도맡아 해야만 하는 일일 것이다. 언론이 자기 기능을 못하고 늑대들이 탈을 쓰도록 방조하거나 부추기고 있으니 국민 스스로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

짜증나는 일이지만 이 짓도 이번으로 끝내려면 더 적극적으로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찾아내야만 한다. 이놈 저놈 모두 양의 탈을 쓰고 토끼의 탈을 쓰고 돌아다니지만 늑대의 울음소리와 음흉한 눈동자는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대선은 결국 진짜 양과 양의 탈을 쓴 늑대를 감별하는 게임이 될 것이다. 굿바이 늑대, 그 날이 오기까지.

이명현 SETI코리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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