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출판사를 운영하는 선배와 백화점에 들렀다가 지하주차장에서 줄행랑 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주차가 되어 내리려는데 그만 내가 연 문과 옆 차 운전석에서 내리던 한 젊은 남자의 문이 살짝 닿았던 거다. 스크래치는커녕 앞으로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사소한 교훈 하나 얻어갈 일이었는데 그 남자 왈, 아주 부셔라, 부셔, 그래서 어디 부셔지겠나, 혼잣말을 하지 뭔가.
순간 얼굴이 빨개진 나, 이게 무슨 개 뼈다귀 같은 경우야, 하며 아주 소심한 복수를 감행하고 말았으니 전술로 삼은 것이 인신공격이었고 결국 그의 긴 생머리 애인의 통나무 같은 다리통 굵기를 무니 뭐니 이런저런 기둥에 비유하다 씩씩거리며 뒤를 돌아본 그녀와 눈싸움 한판을 벌이게 되었다.
파우더를 허옇게 발라 목만 둥둥 떠서 그렇지 아직 앳된 얼굴의 그녀, 넉넉잡아 스물대여섯쯤 되었다 해도 나보다 족히 열 살은 어린 건데 이놈의 방정맞은 입을 어째. 전화기를 들고 사라졌던 여자의 남자친구가 미처 전화를 끊지 않은 채로 애인을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네 따위가 째려보면 어쩔 건데? 시비를 걸어야 영화일 텐데 소심한 나는 이놈의 주둥이를 운운하며 마치 차에 놓고 온 물건이 온 양 잰걸음을 쳤다. 남편이 아닌 애인, 그것도 연애 초기의 남자는 제 피앙세를 위해 목숨도 불사할 만큼 혈기왕성하지 않은가. 슬프다. 선배와 나는 둘 다 노처녀다. 그러게 언니, 우리 더 늙기 전에 복싱 배우자니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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