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용등급이 사상 최초로 일본을 넘어섰다지만 일상에서는 느낌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신용등급이 경제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뭐라도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상황이 오히려 암울하기까지 하다. 집값은 끝없이 추락하고 주식가격 역시 죽을 쑤고 있다. 중산층마저도 하우스푸어로 전락하면서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니 풍족한 소비는 꿈도 꾸지 못한다. 자산가격이 툭툭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라 디플레이션의 악몽을 떠올린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바야흐로 세계가 제로성장(zero economic growth)의 시대로 접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제로성장은 로마클럽이 1972년에 발간한 에 처음 등장하는 개념으로 식량, 환경오염, 자원낭비, 인구과밀 등의 요인으로 금세기에 세계는 성장 정체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사고다. 가 발간된 지 꼭 30년째인 올해 전 세계가 불황에 빠져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미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고, 중국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성장동력이 식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0.3% 성장하는데 그쳤고 올해 성장률이 2%대에 머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명박 정부가 '747' 공약에서 내세웠던 연 7% 성장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에서 제시한 제로성장의 가설이 맞는다면 현재 저성장의 요인은 무엇으로 봐야 할까. 식량, 환경오염, 자원낭비, 인구과밀 중의 하나거나 이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을 한 탓일 게다. 하지만 굳이 이들 중 직접적인 요인을 찾으라고 한다면 자원낭비를 지목하고 싶다. 현재 세계 경제위기는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됐다. 미국은 9ㆍ11테러 사건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왔다. 이라크전쟁은 석유 자원확보를 위한 전쟁이었다. 수조달러의 자원이 투입된 이 두 개의 전쟁은 미국 경제에 치명상을 안겼다. 미국의 일부 무기업체와 방산업체들은 큰 돈을 벌었을지 몰라도 미국 경제는 수렁에 빠졌다.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만약 이 수조달러를 미국 경제를 재건하는데 투입했더라면 결과는 어땠을까. 틀림없이 미국 경제가 이처럼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후 유럽과 세계 각국은 저성장 대열에 합류했다.
이 같은 저성장의 결과는 치명적이다. 실업자가 늘고 한계 상황에 몰리는 인구가 늘어난다. 따라서 분배에 대한 요구도 점차 커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진다. 의 저자 유경찬의 분석이 참고할 만하다. 저성장 단계에서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익을 내지 못하지만 국제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들은 기술혁신, 시장개척 등을 통해 대단한 수익성을 자랑한다. 결과로 나타나는 부의 쏠림과 양극화 현상, 중산층 몰락, 소비 위축, 투자 위축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성장은 어려워진다. 더욱이 성장이 지체되면 분배라는 사회적 문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정확히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1997년에 맞이했던 외환위기는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것이었다. 당시 전반적인 세계 경제는 성장세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충분히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대열에 다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 환경이 그때와 매우 다르다. 성장률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는 저성장에 익숙해져야 하고 정부의 정책도 이 같은 관점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민간경제연구소들도 이미 우리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전제로 전략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분간 기업이나 가계 등 경제 주체들은 목표치를 낮게 잡아야 할 것이고, 정부는 거시 경제 목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대오에서 이탈하는 사회적 약자보호에 더욱 신경을 쓰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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