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지만 어렵게 법정 투쟁을 하겠다고 한 만큼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거예요."
3일 오후, 서울의 한 구청 복지관 사무실에서 만난 A(19)양은 늘 그래왔다는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초점 없는 눈빛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함께 온 여동생 B(16)양의 손을 꼭 쥔 채 '다시 태어나겠다'고 다짐하는 목소리는 희망의 울림이었다. 애써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듯 A양은 연신 동생을 칭찬했다. "동생은 공부도 잘해서 곧 검정고시에도 붙을 거예요. 봉사활동도 얼마나 열심이라고요."
A양을 수년간 성폭행해온 의붓아버지 박모(40)씨는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올 2월 서울 동부지법에서 진행된 1심에서 12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박씨는 "A양이 본인을 유혹했다"며 항소했고, 6월 19일 다시 재판이 열렸다. 당시 A양의 친 엄마(39)가 "딸이 박씨를 유혹해 벌어진 일"이라는 탄원서까지 법원에 제출했고 증언도 했다. 7월 5일 재판부는 A양의 손을 들어줬다. 1심 때와 마찬가지로 징역 12년. 그에 추가해 신상정보공개 10년, 6년간 전자발찌 부착 명령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120시간 이수까지. 박씨는 또 대법원에 상고했다.
A양의 악몽은 제주도에 살았던 어린 시절 친아버지의 잦은 폭력으로부터 시작됐다. 친부모와 세 여동생에 남동생까지 7식구는 늘 불안정한 삶을 유지해 왔다. 어머니는 폭력에 못 이겨 이혼해 서울로 도망쳐 박씨를 만났다. A양과 세 여동생은 2006년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도망쳤다. 당시 A양의 나이는 고작 14세.
"새 아빠가 처음부터 가족은 살을 비비며 살아야 된다면서 옷을 벗기고, 샤워할 때도 몸에 금덩이를 붙여놨느냐며 문도 잠그지 못하게 했어요."
처음부터 박씨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발설하면 폭행을 일삼던 친아버지에게 보내버리겠다고 협박했고, A양은 입을 다물었다. A양은 결국 2010년 8월 의붓아버지의 자식을 출산했고, 이후 참다못해 가출한 A양이 이모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박씨의 범죄가 수면 위에 드러났다. A양의 여동생인 B(16), C(15)씨도 박씨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해온 사실이 경찰조사 결과 확인됐다.
1심과 항소심을 치르는 동안 엄마에 대한 두려움에 숨기에만 급급했던 3개월 전과 달리 지금은 자신과 동생들의 인생을 위해 '투쟁'중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변호사와 해당구청의 복지사, 법률 홈닥터 변호사 등 지인들의 도움으로 '다시 살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고 A양은 학업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동생 B양은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꿈꾸며 열심히 기술을 익히는 중이다. 둘은 월 10만~20만원씩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지금은 연락이 두절된 남동생을 찾기 위해서다. "제가 돈을 벌면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셋째와 막내 여동생도 데려와서 우리 5남매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도 만들 거예요."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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