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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고용의 눈으로 남북관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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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고용의 눈으로 남북관계 읽기

입력
2012.09.0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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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이달 중에 유럽연합(EU)측과 한반도 역외가공위원회를 구성하고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EU FTA(자유무역협정)에서 협정 발효 1년 후에 개성공단의 지위를 다시 논의하기로 한 것에 따른 것이다. 이 규정은 한미 FTA에도 있기 때문에 내년 봄에 미국과도 유사한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은 그동안 경제적 가치보다 주로 남북협력의 상징물로, 긴급 사태의 안전판으로 평가돼 왔다. 실제로 지난 4년 동안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었지만 어느 쪽도 개성공단만은 건드리지 못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 때에도 개성공단의 위력이 발휘됐다. 이제는 개성공단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늘고 있다. FTA에서 개성공단 제품이 역외가공품으로 인정된다면, 개성공단은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2단계 확장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제2, 제3의 개성공단 수요가 폭발할 것이다. FTA 특혜가 아니더라도 재계에선 북한을 중국이나 베트남을 대체할 새 투자처로 주목한다. 대한상의는 8월말 제2의 남북경협공단 설치를 대선 공약으로 채택해 줄 것을 여야에 건의했다. 다음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과 지속 성장을 위한 돌파구로 남북경협을 활용해달라는 요구이다.

재계의 이런 요구가 아니더라도 한국경제에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토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점차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우리 경제를 보며 20여 년에 걸쳐 서서히 시들어가는 일본을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다. 김대중 정부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 5%는 노무현 정부에서 4.3%로 떨어졌고, 경제를 살리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3% 성장도 어려울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만성적인 고용위기다. 2000년대 초 벤처붐이 꺼진 이후 청년 고용사정은 갈수록 악화돼 왔고 고용불안이 모든 계층으로 확산되며 사회의 활력을 질식시키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마치 집단 우울증에 빠져들어 가는 듯하다. 세계적인 자살률과 출산률 기록이 그 증거다. 불안의 시대가 장기화되며 절망과 분노의 화살이 점차 외부로 향할 조짐이다. 직장을 갖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이 묻지마 폭력과 살인을 서슴치 않는 '거리의 악마'로 변해 가고 있다.

복지국가가 답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지만, 마지못한 최소한의 합의에 불과하다. 어떤 복지로 지금의 미래 불안을 차단할 수 있겠는가. 사회안전망은 어디까지나 사후적 처방이고 수세적인 대응일 뿐이다. 사회 전체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경제적 돌파구와 일자리 빅뱅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한 불안의 시대를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없다.

이런 연유로라도 경제와 고용의 눈으로 남북관계를 다시 봐야 한다. 개성공단에는 지금 123개 기업이 1,000여 명의 남측 근로자와 5만여 명의 북측 노동자를 고용하고, 연 5억달러의 제품을 만들어내며 남북경협의 새 길을 열고 있다. 지금 많은 중국 진출 기업들이 새 투자처를 찾고 있으며, 국내 대다수 중소 제조업체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면 공장을 돌리기 어려운 지경이다. 남북 경협의 확대는 이러한 수요를 흡수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러시아의 극동지역 개발이나 중국의 동북 3성 경제와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때마침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이번 APEC 정상회의를 통해 극동시대를 열자고 적극 나설 예정이고 북한의 새 지도부도 해외투자유치를 통한 경제특구 개발에 팔을 걷고 나섰다. 대북관계의 본질은 안보에 있지만 남북경협을 한국경제의 신성장동력으로 재조명하는 경제주의적 접근도 필요한 때다. 우리가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 중국이나 동구권과 관계를 틀 때를 보더라도 역사에서는 경제를 앞세워 정치를 변화시킨 예가 많다.

경제와 일자리의 눈으로 남북관계를 재조명하고, 정치적 대타협을 통해 남북관계의 새 장을 열겠다는 배짱 좋은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이 가능성 때문에 그래도 우리가 추락하는 일본의 과거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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