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마다 옷을 다 꺼내놓고 정리란 걸 했다. 요즘 들어 만날 입는 옷만 돌려 입기에 옷이 없나 옷을 사야 하나 옷장을 열었다가 화들짝, 이게 다 돈인데 아까워죽겠네 혼잣말을 하는 걸 보니 이제야 나도 철이 드는가 보다. 지난날 왜 그렇게 백화점 마네킹들을 부러워했던가.
맘에 드는 옷의 재고가 없다 할 때 마네킹을 발가벗겨가면서까지 옷을 손에 넣고 와야 직성이 풀리던 나, 그렇게 계절마다 족족 사 모은 옷이 짐짝처럼 나를 짓누르게 된 지금에서야 내 이웃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먹으니 사람 참 얕지 않은가. 일단 맘 변하기 전에 세탁소 아저씨를 불렀다.
주어진 건 단 두 시간, 그 안에 내가 입을 옷과 입지 않을 옷을 분류하는데 처음에는 수평을 이루던 시소가 점점 갸우뚱하더니 고작해야 민소매 셔츠 두 개 정도가 내 옷장에서 떠날 목록에 리스트를 올리지 않는가. 이 옷은 이런 사연 저 옷은 저런 사연,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 옷마다 가진 스토리가 어디 평범키야 하겠냐만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남에게 주는 일이 참으로 큰 마음씀씀이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신발장 고리를 고쳐주러 온 관리실 아저씨, 아가씨 신발 장사해요? 뭔 놈의 신발이 우리 가족들 거 모아놓은 것보다 많아, 라는 말이 부끄러움을 느껴지던 어느 날, 길 위에서 월요미사 중인 신부들을 보았다. 나란히 줄 지어서 기도하는 손을 보이는 신부들의 낡고 허름한 옷, 아 빨아라도 드리고 싶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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