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와 더 이상 차이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폴크스바겐 추격도 심상치 않다. 위기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라."
정몽구 현대ㆍ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이 지난달 미국 시장 방문을 마친 뒤 그룹 최고 경영진에게 내린 특명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연초부터 시작된 일본ㆍ독일 완성차 업체들의 공세는 하반기 들어 더 거세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거침없이 질주하던 현대ㆍ기아차로선 초비상이 걸린 상태다.
5일 미국 오토모티브와 국내외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8월 미국시장에서 도요타는 18만8,520대, 혼다는 13만1,321대를 팔아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판매량이 각각 46%, 60%가 늘어났다.
앞서 지난 7월에도 도요타는 13만9,759대로 23.9%, 혼다는 10만4,119대로 46.4%나 각각 증가했다. 대량 리콜 파동으로 시작돼 엔고, 대지진, 최대 부품조달처인 태국홍수 등 악재란 악재는 모조리 겹치면서 지난 1~2년간 최악의 세월을 보냈던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이제 그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이 수치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차의 반격은 곧바로 현대차의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의 8월 판매 실적은 11만1,12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12%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나쁜 수치는 아니지만, 도요타나 혼다의 성장세와 비교하면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기아차보다는 현대차가 더 위축된 상태다. 기아차는 8월 22%의 비교적 높은 신장률을 기록했지만 현대차는 4% 성장에 그쳤다. 더구나 현대차는 ▦6월 6만3,813대 ▦7월 6만2,021대 ▦8월 6만1,099대 등 갈수록 판매량이 크게 줄고 있다.
그 사이'독일의 현대차'로 불리우는 폴크스바겐(5만5,760대)은 기아차(5만28대)를 추월하고 현대차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미국 빅3도 ▦GM 24만520대 ▦포드 19만6,749대 ▦크라이슬러 14만8,472대로 각각 10%, 13%, 14%가 증가했다.
이처럼 현대차의 고속성장세가 주춤하게 된 데는 미국 시장에서 공급부족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8월의 부진은 몇 달 동안 누적된 생산차질의 영향이 컸다"며"현대와 기아 양 브랜드 모두 재고일수가 한 달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물량부족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1일으로 기준 현대차의 재고는 21일분에 불과하다. 지난 7월의 28일분에 비해 크게 감소한 수준이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에서 파는 차는 국내에서 수출된 물량과 미국 내에서 생산된 물량이 섞여 있는데 파업으로 인해 물량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차 재고도 32일분에서 27일분으로 줄었다.
반면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재고일수는 각각 79일, 58일, 65일을 유지하고 있다.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차들의 재고일수도 각각 40일, 55일, 49일로 현대차와 두배 이상 차이가 난다. 현대차 미국법인 관계자는 "재고일수가 최소 두 달은 돼야 딜러에서 정상적인 전시 및 판매가 가능하다"며"미국 시장에서 재고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딜러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현대차 관계자는"이제 미국시장에 대한 위기대응전략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기아차 조지아 공장 생산능력 확대, 신차 출시, 현대차 앨러배마 공장 3교대제 도입과 함께 제값받기 등으로 성장세를 회복해가겠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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