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가채무가 지난달 말을 기해 16조달러를 돌파했다고 AP통신이 4일 보도했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경8,16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다. 미국 전체 국민 3억1,430만명이 각각 5만900달러(5,777만원)의 빚을 짊어진 셈이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4만8,450달러(2011년 기준)인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인들이 1년간 모은 돈을 고스란히 빚을 갚는데 쓰더라도 1조달러에 가까운 부채가 남는다.
미국의 국가채무는 총액상 이미 오래 전 적정 수준을 초과했지만 더 큰 문제는 증가 속도가 갈수록 빨라진다는 점이다.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국가채무는 10조 6,000억달러였는데 지난해 말 15조달러를 넘어선 뒤 9개월 반 만에 1조달러가 불었다. 이대로라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16조 3,900억달러로 규정한 국가채무 법정상한선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결국 미 의회가 채무 상한을 또다시 증액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8월처럼 공화당과 민주당의 극한 대립이 예상된다. 미국 연방정부는 공화당이 지난해 상한 증액에 반대하는 바람에 파산 직전까지 몰렸고 이는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70년 만에 AAA(최고등급)에서 AA+로 강등하는 빌미로 작용했다.
국가채무 문제는 11월 대선에서도 핵심 쟁점이다. 공화당은 오바마 정권에서 채무가 급증한 점을 들어 민주당 정부가 과도한 지출로 국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백악관과 민주당은 조지 W 부시 전임 정부가 망친 경제를 살리느라 빚이 늘었을 뿐이라고 반박한다.
미국 국가채무 급증의 부작용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은 달러를 찍는 기축통화국이어서 국가채무 충격이 다른 나라보다 덜하다. 그러나 재정적자나 무역적자로 인해 미국 밖으로 빠져나간 달러가 세계적으로 자산거품을 부추기고 인플레를 유발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 재정지출을 축소하거나 소비억제 정책을 실시할 경우 미국에 의존하는 주요 수출국에 불황이 전이될 수 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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