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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무례한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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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무례한 스마트폰

입력
2012.09.0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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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민영이는 요즘 학교 가기가 싫다. 며칠 전 신고 갔던 분홍색 새 신발을 보고 친구들이 '촌티난다'며 놀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신발 사진을 찍어간 친구들이 카톡을 통해 돌려보면서 '촌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어제부터는, 민영이의 스마트폰이 수시로 알림 메시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알지도 못하는 이웃 반 아이들과 선배 언니들이 '촌년은 벗고 다녀라', '쪽팔린줄 알아라'는 메시지를 시도 때도 없이 보낸다. 이제 민영이는 학교 복도를 걸을 때 무심코 마주치는 아이들 중에도 그런 욕설 메시지를 보낸 아이가 있을 것 같아 괜스레 불안하고 화가 난다. 기껏 '잘못한' 것이라고는 새 신발을 신고 간 것밖에 없는데, 이런 고통을 겪다 보니 이제 공부도 학교도 다 싫어지려 한다.

비록 가상의 상황이지만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어본 일화이다. 스마트폰 시대는 너무도 많은 것을, 너무도 감당하기 싫은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왕따'의 방식도 포함한다. 내 핸드폰 번호가 누군가의 수중에 들어가기만 하면, 나는 그의 포로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를 통해 욕설이나 이상한 사진 같은 것을 보내면 막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딱 한 번 보내고 사라지는 사람의 경우에는 거의 막을 방도가 없다.

얼마 전 충남 서산의 한 젊은이가 남기고 간 유서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자신이 일하던 피자가게 주인이 성추행은 물론이요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사진까지 공개하겠다며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협박했다. 그는 유서에서 그 가게 주인을 꼭 사형시켜달라고 했다. 그에게 스마트폰을 통해 울려오는 협박범의 메시지는 극한의 고통이었다.

나는 뉴미디어를 적극적으로 경험해볼 것을 권장하는 학자이지만, 스마트폰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누군가가 내 지인들의 연락처가 담긴 수첩을 허락도 없이 가져다가, 익명의 다수에게 공개해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자기 맘대로 내 수첩에 적힌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서 친한 척을 한다면 어떨까. 지금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애용하는 '앱'들이 바로 그런 일을 방조하는 셈이다. 이러한 '앱'들은 직장에서 퇴근한 샐러리맨들에게 귀가 후에도 직장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는 속칭 '개목걸이'가 된 지 오래다. 절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옛 직장 상사가 불현듯 나의 전화기를 노크할지도 모르는 불안의 원천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와 결합하면서 이러한 불안과 위험은 더욱 증폭된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스마트폰을 통해 '친구 신청'을 한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낯선 이들의 신청을 덥석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올리는 사적인 사진들과 메시지들이 익명의 청중들에게도 동시에 '방송'된다는 것이 께름칙해진다. 직장 상사의 호통에 주눅들어있는 내게 '내일 해외로 골프휴가 간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페이스북 친구한테는 차라리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사회적 비교이론'이 말하듯 미디어가 다른 사람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도록 채근하는 일종의 스트레스 제조기가 되는 것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지인은 인턴으로 들어온 학생이 친구들에게 자신의 기업에 대해 근거 없는 비방을 하는 장면을 스마트폰을 통해 접속한 소셜미디어 상에서 우연히 목격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댓글을 달아 반박하고 싶었지만, 혹시 "내 페북 주소는 어떻게 알았어요?"라며 문제삼을까 봐 가까스로 참았다고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직장상사가 소셜미디어에서 자꾸만 참견을 하는 바람에 그를 속이기 위한 가짜 계정을 따로 만들어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만 공개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프라이버시를 지켜내기가 요즘만큼 힘든 적이 있었을까 싶다.

스마트폰은 인류사상 수없이 명멸해간 미디어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 문명의 이기에 얽힌 우리의 부주의함과 배려의 결여는 오히려 인간미나 정을 점점 더 희미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김장현 하와이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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