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83)가 5일 오후 자신의 건축 세계를 주제로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강연했다. 80대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혁신적인 건축가로 불리는 게리의 강연을 듣기 위해 건축가, 건축과 학생, 문화계 인사 등 400여 명이 몰려들었다.
미국 LA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시카고의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 등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그는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도 받았다. 티타늄으로, 종이를 말듯이 설계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의 대표작. 게리는 미국의 인기 만화 '심슨 가족'에 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는 "만화에선 구긴 종이 더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지만 그렇진 않다"고 웃으며 1시간 반 동안의 강연을 시작했다.
"전 움직이는 듯한 형태의 건축을 실현하고 싶었어요. 결국 찾아낸 것이 비행기 설계에 사용하는 카티아(CATIA)라는 소프트웨어입니다. 당시 건축계에선 컴퓨터 사용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전 이 프로그램을 건축에 도입했고, 그로부터 25년간 이렇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소수점 7개 자리까지 정확히 계산해주기 때문에 예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건축이 세워질 수 있던 것이죠." 게리의 과감한 시도로 20세기 후반, 건축계는 혁신을 맞았다. 그는 아예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게리 테크놀로지라는 회사도 세웠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와 리움 미술관 설계 건축가 중 한 명인 장 누벨도 이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첨단의 기술을 자유롭게 활용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동양의 미도 내재되어 있다. 한국 방문 중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종묘를 돌아본 그는 "건축을 시작할 때부터 아시아 예술과 건축에 깊은 관심 가지고 있었다"며 "제가 사는 '게리하우스'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내부를 보면 아시아의 영향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오기 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을 둘러봤다는 그는 후배 건축가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최근의 건축의 경향은 반예술적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경기침체 같은 외부 영향으로 조용하고, 열정도 없고, 예술도 없는 형태로 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어느 시대든 문제는 있었죠. 그런 이유로 자신이 가진 사랑과 열정, 희망을 건축에 담아내지 못하고 억눌러서는 안됩니다."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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