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그르르르 채편 굴리는 소리 대신 덩더꿍 북소리가 마치 판소리라도 하는 것 같다. 대신 추임새가 없다. 선은 굵고 표정은 정갈하다. 김해숙(57)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가 발표한 네 번째 음반 '최옥삼 가야금산조'(아르모니아 문디)는 고졸(古拙)함으로 듣는 이들을 당긴다. 프랑스 국영방송국 가 제작하고 음반사 아르모니아 문디를 통해 60여개국에서 동시에 출반됐다.
'최옥삼'은 화사한 성금연, 풍류처럼 깊은 맛의 김죽파 등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 산조 가야금의 지형도에서 제3의 등고선을 그은 산조다. 최옥삼 - 함동정월 -김해숙으로 통하는 이 소리는 논리적이고 씩씩하며 꿋꿋한 남성적 선율이 인상적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개최한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식'에 초대돼 가야금과 거문고 등 줄풍류로 최옥삼류 산조를 연주하고 돌아온 김 교수는 최옥삼류에 대해 "조(調)가 훨씬 다채롭게 바뀐다"며 "선법적으로도 변하는 선율 구조가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 작업은 "고수의 추임새가 없어 몰입할 수 있었다"며 "실제 무대에서는 추임새를 넣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중국 가서는 빠른 음악을 선호하는 중국인의 기호에 맞춰 연주했으나, 국내 연주는 깊이가 우선이라는 경험치와도 상통한다.
지금까지 발표한 네 장의 음반은 바로 깊이를 화두로 한 일련의 시험장이었다. 30대 초반 김명환 반주로 만든 '가야금 산조'는 "뭔가 자랑하듯" 매우 빨랐다. 2007년 국악방송에서 발매한 산조 음반 기획물 '산조 기행'중 수록된 그의 연주도 화려했다.
그러다 '깊이'라는 내면을 돌아다 보기 시작한 것이 3집부터다. "음악을 설계해 간다는 심정으로 속도를 통제했죠." 즉흥 음악으로서의 산조가 아니라 고정화된 음 집적물로서의 산조라는 개념에 충실하려 했다. 진양조를 거쳐 종지부로 치닫기까지, 산조가깊이와 필연성의 예술이라는 점을 보이려 했다.
이번 음반은 이를테면 이런 과정의 발전적 종합판이다."명인들이 연주와 작곡을 동시에 하는 것처럼 한국 전통음악 중 내가 공부했던 것을 작곡으로 승화시킨 거랄까요." 그는 "동시대인의 소통을 염두에 두었으니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악중ㆍ고, 서울대 국악과(73학번),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등 정통의 길만을 걸어 온 김 교수는 "소원이 있다면 제 이름 단 산조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형식의 신작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것은 더 완벽한 자기류의 산조를 탄생시키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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