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성미 국내 첫 개인전 '비움과 채움'/ 이방인의 깨진 마음… 스스로 치유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성미 국내 첫 개인전 '비움과 채움'/ 이방인의 깨진 마음… 스스로 치유하다

입력
2012.09.04 11:33
0 0

세련된 외모의 젊은 여성 조각가 손은 온통 굳은살투성이다. "재료와의 기 싸움에서 밀리면 안 돼요. 무서워하면 더 많이 다치거든요." 잘게 깨진 자동차 유리를 재료 삼아 맨손으로 작업해온 그의 입에선 농담 같은 진담이 흘러나왔다. 드로잉,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명상과 치유를 주제로 작업하는 조각가 이성미(35)씨다.

최근 김종영미술관에서 선정한'오늘의 작가 3인'중 한 명으로 10월 14일까지 3인전을 열고 있는 그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도 9월 16일까지 '비움과 채움'(Empty to Be Filled)전을 연다. 2005년 미국 메릴랜드 컬리지 오브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조각과 석사학위를 이수한 후 줄곧 미국에서 활동해온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가나아트센터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 23점은 언뜻 단순하고 담백해 보인다. 장식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의 경향을 따른 것 같기도 하고 백자와 청자와 같은 도자 작업의 변형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품의 재료와 작업 방식은 예상을 뒤엎는다. 자동차 유리, 나무, 스티로폼, 작은 구슬 등 버려지거나 값싼 물건으로, 지난한 수작업을 거친 결과물이다.

"제 작품은 다들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멀리서 보면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작업 과정에선 날카로운 유리에 베이는 것 같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거든요. 이런 과정은 고단함이기보다 일종의 명상이자 자기 치유의 과정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겪은 내적 혼란과 문화 충격이 작업의 모티프가 됐다. 우연히 브루클린 거리를 걷다가 모퉁이에서 발견한 깨지고 흩어진 유리를 보고 이방인이며 경계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떠올렸다. 이후 그는 사고로 부서진 차 유리의 파편을 모아 스티로폼 위에 모자이크 혹은 퍼즐처럼 하나씩 붙여나갔다. 은은하게 발하는 초록빛이 멀리서 보면 청자처럼 보인다.

호흡까지 조절하며 복잡한 드로잉을 한 번에 그려내거나, 30일 동안 매일매일의 마음 상태를 움푹 팬 그릇의 깊이로 표현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여정' 시리즈는 공기 중에 사라지는 향의 흔적을 투명한 유리판 위에 담아낸 작품이다. 한 손으로 유리판을 살며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600여 개의 향을 하나씩 꺼내 피웠다. 타원형의 구름이 형상화된 작품은 한 폭의 수묵화거나 시꺼멓게 타버린 마음 같다. 지나가던 한 줄기 바람은 희미한 흔들림으로 남았다. (02)720-102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