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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군인의 죽음, 국가가 보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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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군인의 죽음, 국가가 보살펴야

입력
2012.09.0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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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할리우드 영화 속의 자살 장병 얘기를 칼럼에 쓴 적이 있다. 영화는 18세기 초 나폴레옹에 맞선 영국 해군의 활약을 그렸다. 러셀 크로우가 엄격한 함장 역을 맡은 영화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세 불리한 전투를 앞둔 압박감에 눌려 자살한 초급사관을 해군 전통대로 수장(水葬)하는 장면이었다. 모든 승조원이 경건하고 비통한 표정으로 애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며칠 뒤, 자살 장병'처리'를 둘러싼 오랜 논란을 다룬 군 정책 토론회에 서 영화 얘기를 했다. 군 안팎의 토론 참가자 대부분이 자살 장병의 국립묘지 안장에 반대했다. 군인의 책무를 저버린 장병을 전사· 순직 장병과 동등하게 예우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자살 장병의 국립묘지 안장은 전사 또는 순직 장병과 유가족들의 명예심을 훼손한다는 반대 논리는 언뜻 일리 있다. 그러나 군에 보낸 아들을 졸지에 잃은 유가족의 억울한 심정을 달리 돌볼 길이 막연한 현실을 군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마땅한 것도 틀림없다. 배석한 영관급 실무자들도 일선 지휘관 경험에 비춰 자살 장병을 어떻게든 배려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위안이 됐다.

변화는 군 바깥에서 시작됐다. 2006~2009년 군 의문사 장병 579명의 사례를 일일이 조사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군이 단순 자살로 처리한 87명을 순직으로 인정하도록 권고했다. 국민권익위와 국가인권위, 법원도 잇따라 변화를 재촉했다. 완고하던 군도 이에 따라 폭언이나 폭행, 가혹행위를 못 견뎌 자살한 장병을 순직으로 인정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국방부가 7월부터 시행한 '전공(戰功)사상자 처리훈령'은 군 사망자 분류에서 변사와 자살을 삭제, 일반 사망이나 순직 처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순직으로 인정되면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고, 국가보훈처 심사를 거쳐 국가 유공자나 보훈보상 대상자로 지정되면 유가족 연금도 받는다. 그러나 군과 보훈처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자살 동기와 업무 연관성,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해석해 구타와 학대 등 군의 책임이 명백하지 않으면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유가족들은 힘겨운 법정 다툼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다.

최근 대법원은 집단 따돌림 등 군 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한 사병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로 새 이정표를 세웠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자해로 인한 자살은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은 "군의 특수한 여건 때문에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을 호소하거나 적절히 치료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자살하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개인의 나약함 탓으로 돌리는 것은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고 규정했다.

자살을 죄악으로 여기는 인식은 동서양 모두 뿌리 깊다. 그러나 현대 정신의학은 자살을 단순히 자기 파괴적 일탈행위나 현실 도피로 보지 않는다. 겉보기와 달리 지극히 복잡하고 난해한 동기로 인격이 말살될 두려움에 직면,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절박한 방어행동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보면, 장병의 전(全) 인격을 통제하다시피 하는 군과 국가가 엄격한 생존 조건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장병을 천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목숨 걸고 적과 싸울 것을 강제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장병의 안녕과 복지를 돌볼 군과 국가와 사회의 책임과 의무가 크다. 구타와 학대 등 군의 책임이 명백히 입증되지 않더라도 군의 울타리 안에 묶인 모든 장병의 죽음은 군과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것이 절실하다.

우리 군과 사회는 이제 겨우 18세기 영국 해군의 인식 수준에 이르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만큼 장병 처우와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발전시켜야 할 과제가 무겁다. 무엇이 진정한 사회의 진보인지 함께 성찰해야 한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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