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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풀벌레들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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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풀벌레들의 사랑

입력
2012.09.0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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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뜨거워서/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매미가 울어서/여름은 뜨거운 것이다//매미는 아는 것이다/사랑이란 이렇게/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뜨겁게 우는 것임을//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매미는 우는 것이다'(안도현 시 전문). 유난히 뜨거웠던 올 여름을 더욱 뜨겁게 했던 매미 소리가 거짓말같이 잦아들었다. 뚝 떨어진 기온 탓이다. 온도 변화에 민감한 매미는 낮에 기온이 오르면 다시 울기도 하고, 늦털매미는 10월까지 울지만 매미의 시절이 지난 건 분명하다.

■ 두 차례 태풍이 물러가고 선선해진 요즘 풀섶은 온갖 풀벌레 소리로 가득하다. 대표가수는 귀뚜라미다. 알락귀뚜라미는 '뀌뀌뀌뀌 뀌뀌뀌뀌' 4박자로 울고, 극동귀뚜라미는 '뀌릭 뀌릭'단조롭게 운다. 왕귀뚜라미 소리는 '귀뚜르르~'가야금 줄 고르듯 청아하다. 방울벌레귀뚜라미는 '히리이~링 히리이~링'하고 구슬프게 우는데, 옛부터 고향을 떠나왔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가슴을 가장 저미게 했을 소리다. 여치, 배짱이, 긴꼬리 등도 저마다의 곡조로 초가을 밤을 지샌다.

■ 풀벌레 소리는 짝짓기를 위한 구애의 세레나데다. 아름답고 우렁차게 울수록 암컷의 선택을 받기 쉽다. 강하거나 아름답거나 뭔가 있어 보이려 하는 것은 자연계 수컷들의 공통적인 암컷 차지하기 전략이다. 귀뚜라미 수컷은 작은 땅굴을 파거나 바위틈을 이용해 우는 소리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긴꼬리는 넓은 이파리에 구멍을 뚫어 소리를 공명시킨다.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미물들의 지혜가 놀랍고 눈물겹다.

■ 소리를 우렁차게 내지 못한다고 반드시 루저로 남아야 하는 건 아니다. 우렁차게 우는 수컷 근처에 숨어있다 암컷이 나타나면 재빠르게 먼저 올라타는 녀석이 있다. 그러고 보면 풀벌레 소리 자욱한 초가을 밤이 평화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짝짓기를 위한 치열한 투쟁과 얌체 짓이 난무하는 생존경쟁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온갖 생명체들이 생명을 이어가는 질서가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숙연해진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랑이란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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