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에서 빈손으로 내려와 굶기를 밥 먹듯 하며 모은 돈 입니다. 돈 없어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썼으면 좋겠습니다."
하얀 모시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김순전(89) 할머니가 지난달 14일 연세대 총장실을 찾아 정갑영 총장을 만났다. 그는 "내가 가진 전 재산을 학교에 유증(遺贈)하겠다"고 말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할머니가 연세대에 내놓은 재산은 서울 중곡동 집과 숭인동, 능동, 공릉동 소재 주택 및 상가 4채의 소유 지분, 예금 등 포함해 총 100억원 규모다.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불 한채만 갖고 남쪽으로 피난 왔다. 빈손으로 정착한 낯선 서울에서 가족들 생계를 꾸려나가는 건 쉽지 않았을 터. 김 할머니는 "버스비를 아끼려고 후암동에서 동대문까지 버스로 4~5 정거장 되는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녔다"고 말했다. 그렇게 60여 년간 한결 같이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다.
온갖 장사에 안 해본 일이 없다는 김 할머니는 어렵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을 부동산에 투자했다. 운이 좋은 때문인지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재산 규모가 100억원까지 늘었다.
김 할머니는 "식구들 먹고 살 걱정은 없다"며 "저는 생각지 마시고 그저 어려운 아이들을 뽑아 훌륭한 일꾼으로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연세대는 지난달 말 김 할머니가 기부의사를 밝힌 재산의 소유권 이전 등 절차를 마무리했다. 정 총장은 최근 김 할머니 집을 직접 찾아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 돈인지 알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어르신의 뜻대로 잘 쓰겠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학교 관계자는 "할머니를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따로 초청해 건강진단을 받게 하고, 보청기를 선물했다"며 "할머니의 이름을 딴 '김순전 장학기금'을 운영하고, 사후 장례도 주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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