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있어 간만에 서소문동에 내렸다. 전 직장이 그 언저리라 근 4년간을 오갔던 길인데 둘러보지 못한 몇 년 동안 변화가 꽤 많았음을 낯선 간판들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새 커피숍과 각종 은행들이 속속 들어차 버린 상권 가운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선 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 삼계탕 가게뿐인 듯했다.
도로 한 옆으로 잔뜩 줄을 이은 관광버스며 뭔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 외국인들은 그 출신부터 꽤나 다양해진 듯했다. 전에는 대부분이 일본인과 중국인이었는데 오늘은 필리핀 사람들을 다 보네.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끼고 삼계탕 간판을 배경으로 브이 자를 그려가며 활짝 웃는 그네들은 연신 기념촬영에 상기된 표정이었다.
하물며 주차 금지라 적힌 네모난 나무 궤짝 위에 앉았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 나뒹굴면서까지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여행자만의 추억 쌓기로 바빴으니 말이다. 그러나 필리핀 사람들을 구경하던 우리들이 동시에 필리핀 사람들로부터 구경 당하는 입장이 된 작은 소란이 있었으니, 바로 그들 앞에 쓰러진 한 여성으로부터 말미암아서였다.
은행 직원인 듯 유니폼을 입은 여성 주위를 에둘러 싼 필리핀 사람들의 기도하듯 모은 두 손, 손톱에 칠해진 색색의 매니큐어…. 그 와중에 나를 보며 인상이 너무 좋다며 얘기 좀 하자는 도 아저씨, 시끄럽거든요! 역에서부터 약 백 미터 정도를 걷는 5분간의 일이었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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