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의 낭만이 흐르는 밤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뒤의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리아의 잔향이 공연장을 감쌌다. 선선한 바람이 성탄절 이브를 재현한 무대를 스쳐 객석의 열기를 식혔다. 번잡한 주말 저녁 도심 속 야외 공연장이 19세기 초의 프랑스 파리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예매 부진에 따른 공연 축소와 기상악화로 인한 순연 등의 악재를 딛고 야외 오페라 '라 보엠'이 1, 2일 두 차례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펼쳐졌다.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의 미명이 천막을 치고 풀벌레 소리가 자그맣게 깔리는 초저녁, 가난한 시인 로돌포와 아름답고 병약한 미미가 부르는 애절한 사랑의 노래는 달콤하고 매혹적이었다.
1일 첫 무대에서 확인한 '라 보엠'은 7월 프랑스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 공연의 라이선스 버전이지만 무대 환경이 달라지면서 다소 차이가 있었다. 우선 영상을 썼다. 연세대 노천극장 무대는 오랑주 고대극장보다 폭이 좁지만 파리의 거리를 투사한 병풍 모양 스크린 덕분에 효과적으로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됐다. 공간에 대한 설명도 한층 명료해진 느낌이었다. 거대 석벽을 반사판으로 활용해 자연 음향을 그대로 살린 오랑주 공연과 달리 부분적으로 마이크를 사용한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정명훈 예술감독 지휘의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주에 맞춰 관록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미미)와 활기찬 미성의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로돌포)가 빚어낸 안정된 호흡은 충분히 빛났다.
그러나 공연의 만족도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미 알려진 대로 운영상의 많은 논란 거리를 안고 있던 공연은 진행 면에서도 문제점이 노출됐다.
최고가 57만원의 고가 티켓 논란과 판매 부진으로 공연 횟수가 4회에서 2회로 줄었고, 개막 직전에는 SNS를 활용한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45만원 티켓이 6만~12만원에 할인 판매되면서 결과적으로 객석은 꽉 찼다. 1일 공연의 경우 전체 6,600석 중 90%의 객석이 찼다.
그런데 캠퍼스 내의 주차 공간이 부족한 데다 주차 안내 요원이 부족해 관객 입장이 지연되면서 공연은 정시보다 15분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일부 예매 좌석이 중복돼 혼선을 빚었고 뒷좌석에 앉아 있던 일부 관객들이 비어 있는 앞 좌석으로 한꺼번에 이동하느라 소란이 일기도 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뿐 아니라 한국 공연 시장의 정확한 이해와 마케팅 마인드까지 고루 갖춘 공연 기획자의 부재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오페라 평론가 유형종씨는 "야외 공연장의 분위기가 좋고, 성악가들의 소리가 전달되기에 음향도 괜찮은 편이어서 공연 자체는 만족스러웠지만 오페라의 문화적 저변이 넓지 않은 상태에서 야외 오페라는 이벤트성 행사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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