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은 지나갔고 가을은 시작됐다. 서울 우면산에서만 18명이 숨진 작년에 비하면 태풍이 2개나 한반도를 지나갔지만 인명피해는 적었던 한 해였다. 그러나 아찔한 순간은 올해도 있었다. 군산과 강릉에서 산사태로 2명이 세상을 떠났고 군산의 아파트 주차장을 덮친 사고도 있었다. 사고가 인재냐 천재냐 원인규명은 진행중이다. 작년 서울시 우면산 사고 역시 아직은 속시원하게 원인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국내에서 산사태만 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문가가 있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이수곤(59) 교수. 그는 지질학 1세대인 이정환(88) 전 국립지질광물연구소장의 아들로 토목지질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문대인 영국 임페리얼컬리지 왕립광산대학에서 한국 화강암 풍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87년 귀국, 25년간 산사태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는 '산사태 사고가 났다 하면 천재라고 규정하는 원인보고서는 공무원과 학자들의 담합 때문'이라며 제대로 원인규명도 하지 않고 복구에 돈을 쏟아 붓는 한국의 행정실태를 비판한다.
_산사태는 왜 일어나는 건가요?
"돌은 풍화를 거쳐 흙이 됩니다. 땅을 보면 돌이 있고 그 위에 풍화암이 있고 그 위에 흙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매년 장마가 올 때마다 흙이 씻겨 내려가서 토양층이 1미터 정도 밖에 없어요. 비가 오면 흙으로는 물이 들어가지만 돌로는 못 들어가요. 물이 흙에 흡수되는 양을 넘어서 흙과 돌 사이 경계면까지 내려가게 되면 부력이 생겨서 흙이 붕 뜨면서 쏟아져 내리는 것을 산사태라고 해요. 경사가 30도만 넘으면 어디나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에요. 흙만 쏟아지는 게 아니라 돌덩어리를 포함한 토석류와 나무까지 함께 쏟아져요. 보통 산에 나무가 있으면 산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비가 적게 와서 나무가 다 흡수해줄 정도를 말하는 것이지 많이 오면 돌까지 닿는 시간을 늦춰주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어요. 많이 오면 나무까지 쓸려 내려가기 때문에 나무가 교각을 쳐서 다리를 무너뜨리고 다리 사이에 자리잡고 댐 효과를 내서 강이 범람하게 하고 배수구를 막아서 더 위험합니다. 우면산 경우에도 그렇지만 100년 200년 빈도의 장마에 대비해서 배수구를 만들었다는데도 쓸모없는 게, 산에서 맑은 물이 배수구로 쏟아지는 게 아니라 토석류와 나무까지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_그럼 산사태라는 건 피할 수 없는 건가요?
"산사태 자체는 비가 많이 오면 어디든 일어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다치는 것은 막아야지요. 문제는 우리나라의 행정구조가 그걸 예방하게 갖춰져 있지 않아요. 산지 주변에 마을이 들어선다면 산사태가 날지 영향력 평가를 해서 허가를 내줘야 하는데 그게 없어요. 도로로 산이 끊기면 물길을 어디로 내줘야 한다 이런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건물허가는 주택과에서 내줘요. 산은 공원녹지과가 담당해요. 도로는 토목과에서 해요. 나중에 산사태가 나서 책임소재를 따지면 서로 미루기만 해요. 대형사고가 닥치면 그제야 원인규명을 하는데 결국에는 다 천재로 규정하고 끝나요. 교수들한테 원인규명보고서를 받지요. 그런데 그 조사용역을 주는 사람들이 공무원이잖아요. 결국은 공무원한테 책임을 묻지 않도록 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_실제로는 다 인재란 말입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됐던 우면산이나 올해 일어난 강릉 옥계광산 사고는 현장에 가보니까 인재가 확실해요. 옥계광산은 땅을 거의 수직으로 잘라내면서 한번도 안전진단을 받지 않았어요. 마지막 10미터를 더 파내면서 한꺼번에 무너진 겁니다. 우면산이 무너진 게 작년 7월 27일인데요. 6월 29일에 서울 초안산에서 먼저 산사태가 났어요. 춘천 밀양 전국적으로 산사태가 나면서 한달 동안에 58명이 죽었어요. 그래서 '추적60분'에서 산사태를 다루면서 제가 우면산 사고가 나자마자 방송취재팀과 현장에 갔어요. 거기 위에 공군부대가 있는데 거기가 다 무너져서 공군부대인지도 몰랐어요. 거기에서 먼저 산사태가 시작되어서 내려간 것인데 한국지반공학회에서 서울시 용역을 받아서 원인규명에 나서서 8월 1일 중간발표를 했어요. 그때만 해도 공군부대 영향이 있다, 그래서 공군부대는 아니라고 하고 싸웠어요. 9월 15일날 최종발표를 했는데 8월말에 오세훈 시장이 날라가잖아요. 주인이 없어요. 발표를 네 다섯 번 미루더니 최종 발표가 아무도 책임이 없다, 천재다, 이렇게 나와요. 믿을 수 愎募?언론보도가 나오니까 보고서를 안 내놓다가 11월 30일날 인터넷에 띄웠어요. 내용은 비 많이 온 강우량 데이터하고 사고 난 사진. 끝. 12군데가 무너졌는데 보고서에는 4군데만 조사하고 천재라고 발표한 거에요. 최종 결과를 발표하고 9월 30일 책임자인 교수가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왜 4군데만 했습니까' 하는 질문에 '서울시에서 거기만 집어줘서 했다'. 왜 천재라고 했느냐 하니까 '나는 천재라고 보고서에 쓴 적이 없다. 무너진 것은 서울시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랬어요. 그래 놓고는 11월 30일 보고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어요. 10월 26일 박원순 시장이 됐잖아요. 인터넷에 올린 학회 보고서가 언론에서 질타를 받자 12월 2일 따로 자문위원회의를 했어요. TF팀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저를 불렀어요. 원인조사를 저더러 해달래요. 저는 외국의 전문가를 불러다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돈이 들어서 못한다고 했어요. 최종 원인규명보고서가 나오기 전에 이미 서울시는 복구공사를 한다고 600억짜리 수의계약을 했어요. 예방공사에 별도로 500억이 들어가요. 산사태 전문가는 하나도 없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이 조사연구를 다시 시킨다고 70억짜리 용역을 줬어요. 그런데 외국인 전문가 11명을 불러올 15억원이 없다는 거에요. 그 사람들이 오면 원인만 규명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도 세워줘요. 1,200억원을 쓸데없이 쓰는데 전문가가 오면 100억은 줄여준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완전히 묵살을 당했어요. 그래서 TF팀을 나왔어요. 나온다고 하니까 공무원이 그래요. "선생님, 앞으로 다른 용역도 많은데." 제가 살아온 게 그게 아니잖아요. 지금도 서울시에서는 보완조사를 시립대에서 해달라고 공문이 날라와요. 보완조사라는 게 뭐예요. 12개 사고지역 가운데 나머지 8개를 조사해서 천재라는 것을 꿰맞춰 달라는 거잖아요. 한국지반공학회 책임교수는 올해 7월 30일에도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서울시 책임이 있다, 복구공사 하는 거는 문제가 있다' 그러는 거에요. 제 주장과 똑같아요. 지금 우면산 피해자들의 소송은 학회보고서를 토대로 서울시가 천재라며 대응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저는 박원순 시장이 참 안타까워요. 이걸 제대로 하면 훌륭한 시장이 될 수 있는데 공무원들한테 둘러싸여서 뭐가 문제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
_원인은 이미 아는데 왜 외국 전문가가 필요한 건가요?
"원인을 몰라서 못 고치는 게 아니라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쳐서 원인을 안 알아 내려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잖아요.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나서야 그 고리를 끊어줄 수 있어요. 히딩크가 필요한 거예요."
_실제로 공사비 자체도 줄일 수가 있습니까?
"그럼요. 산사태는 위에서 내려오면서 커지잖아요. 처음에는 별거 아니에요. 그래서 포인트만 막아놓으면 멈추거든요. 물길을 돌려야 하면 돌려주고요. 스위스에서는 곳곳에 펜스를 치는 방식을 쓰는데 이게 토석류와 나무는 걸러주고 물만 내려가게 하니까 적은 비용으로도 효과가 커요. 그런데 우리는 뭐든 시멘트로 덮고 아래는 커다란 댐까지 만들겠다는 식인데, 이러면 공사비는 많이 들고 효과는 별로 없어요. 엄청난 돈이 낭비가 되는데도 천재지변에 의한 공사는 긴급비용이라고 해서 감사원 감사도 받지 않아요. 수의계약으로 공사가 이뤄져요. 원인규명부터 복구까지를 다 공무원들이 맡아요. . 그래서 산사태가 나면 공무원들이 화장실에서 웃는다는 우스개도 있어요"
_원래 학회의 원인규명 조사보고서가 행정의 전횡을 막아야 하는 건데요.
"그런데 그걸 안해요. 2001년에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산사태가 나서 사람이 죽었어요. 그곳 신부님이 와서 봐달라고 해서 갔더니 거기 토질이 풍화암이에요. 그걸 잘못 건드려서 사고가 난 거예요. 방송에서 그렇게 발언을 했더니 거기가 화강암 지역인데 명예를 훼손했다고 업체에서 저한테 8,000만원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어요. 3년 동안 재판을 했는데 이때도 지반공학회에서 화강암이 맞다고 보고서를 써줬어요. 원래 화강암이면 공사비가 풍화암일 때보다 다섯 배는 많이 들어요. 그러니까 업체에서 화강암이라고 속여서 돈을 더 받아 챙기고는 공사를 한 거예요. 그런데 이곳 지반을 뚫은 업체가 저한테 진짜 보고서를 줘서 3년 재판 끝에 무죄를 받을 수 있었어요. 2001년에 김해에서 산사태가 나서 농공단지를 덮쳤어요. 21명이 죽었어요. 이 농공단지를 만들 때 여섯 번이나 안전진단을 했어요. 산사태가 나는 데 40분이 걸렸는데 공무원들이 그걸 사진으로 찍으면서도 사람들한테 대피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어요. 결국 사고 나서 거기 입주한 업체가 완전히 망했어요. 이 업체 사장이 김해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고 원인규명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한국토목학회에서 이건 천재라고 보고서를 썼어요. 김해공단에서는 240억으로 복구공사를 하고는 끝이에요. 처음에는 김해시청하?이 사장이 돈을 반씩 내서 원인조사 용역을 맡겼어요. 당시 해양대 교수하던 서영교씨가 토목학회 부산울산 지회를 맡아서 아주 성실하게 양심적으로 보고서를 썼어요. 그런데 토목학회에서 이 보고서를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봉천동 사건에 매여 있어서 2004년에야 소송이 끝나고 이 사건에 100페이지 보고서를 썼어요. 인재가 확실하다는 거지요. 그런데 제가 2003년에 임학회가 하는 안전진단에 참여한 적이 있거든요. 당시에도 임학회가 천재라고 보고서를 만들려고 해서 저는 손 떼고 나왔어요. 그런데 김해시에서 2003년 안전진단 참여연구원일 때 보안각서를 쓰지 않았냐고, 당시 내용을 공개하면 안된다는 각서였으니까 소송에 참여하면 240억 손해배상소송을 저를 상대로 걸겠다는 거예요. 결국 100페이지 보고서를 그 사장에게 전해주지 못했어요. 그 사장은 소송에 졌고 폐인이 됐어요. 그게 너무 미안해서 2007년에 이 내용을 영어 논문으로 써서 국제지질학회 저널에 실렸어요."
_결국 대책은 뭔가요?
"담당 공무원이나 관련 학회, 관련 업체에 책임을 가혹하게 물어야 돼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소방방재청에서 자연재해저감기술개발 보고서를 만들었어요, 풍수해 지진 7개 중에 저는 산사태를 맡아서 2011년까지 조사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2009년에 청장이 바뀌니까 과제를 끝내래요. 그래놓고는 공무원들이 업적삼아 산사태 위험지역 1만2,000군데를 꼽아서 그 자료에 붙였어요. 사고가 나는 데를 보면 이 자료와 일치하는 데는 한군데도 없어요. 그런데 그 자료를 토대로 500억짜리 예방공사를 하는 거예요. 이게 도대체 뭐냐구요."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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