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잘 살아 보자고 결혼해서, 십 수 년 간 생사고락을 같이해 온 아내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혼 통보가 날아왔다. 이혼 사유를 물으니 "분위기 쇄신!" 때문이란다. 이보다 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이혼 사유가 또 있을까. 그런데 이 같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실제로 MBC 'PD수첩' 작가들에게 일어났다.
1990년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로 지난 20여년 동안 PD수첩은 우리 사회의 어둡고 소외된 곳에 조명을 비추는 정직한 목격자의 역할을 해왔고, 묻힐 뻔 했던 수많은 알권리들을 묵묵히 일으켜 세워온 명실상부한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이다. 헌데 바로 그 'PD수첩'의 메인 작가 여섯 명이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7월 25일 전원 해고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해고된 작가들은 최근 들어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정재홍), '김종익씨 민간인 사찰'(장형운), '기무사 민간인 사찰'(이소영), '오세훈의 한강 르네상스'(이화정) 등의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으며 적게는 4년, 길게는 12년간 PD수첩 제작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작가들이다.
MBC 구성작가협의회에서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작가 교체는 정기적인 개편 시기를 맞아 프로그램 제작진이 새로 구성되거나 비일상적으로는 제작 담당 피디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진다. 불가피하게 작가 교체가 이루어져야 할 경우, 팀장이나 담당 피디가 해당 작가에게 최소 한두 달 전에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그러나 이번 작가 교체는 당사자들은 물론 PD수첩 피디들조차 전혀 모르는 사이에 기습적으로 이루어졌고, 뒤늦게 해고당한 사실을 알게 된 PD수첩 작가들이 담당팀장과 국장을 찾아가 해고 경위를 밝힐 것을 요구하자 돌아온 대답은 '분위기 쇄신'이라고 했단다. "분위기를 쇄신하는데 왜 작가를 축출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작가 해고는 법률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법률적으로 문제없다'는 말은 그 동안 도덕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인 수많은 이슈들이 가장 맨 앞에 내세웠던 문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행간에는 "비록 비인간적일지라도…" 라는 보이지 않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실질적으로 그들이 이번 해고사태에서 보여준 비인간적, 비상식적 과정들은 지난 십 수 년 간 함께 고락을 같이 해 온 작가들의 영혼에 분노와 상처를 주었다. 이에 '사상 최초'로 MBC 사옥 앞에서 'PD수첩' 작가 해고사태 규탄 및 대체 작가 거부 결의대회가 개최됐고, 현재 방송 4사를 비롯, 외주제작사 소속 작가 900여명이 PD수첩 대체작가 거부를 선언한 상태다. 이 역시 방송 '사상 초유의' 일이다. '만나면 좋은 친구'는 이제 만날수록 이해 불가한 친구가 돼버리고 만 것 같다.
알다시피 PD수첩이 쌓아온 지난 20여년의 세월은 결코 가볍지 않다. 때문에 그 오랜 세월 함께 열정을 나누고 청춘을 바쳐온 피디들과 작가들의 노고, 끊임없이 이 세상의 진실을 두드리며 쌓아온 그들의 치열한 세월과 역사는 "분위기 쇄신"이라는 조악한 변명만으로 절대 사라질 수도 해고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PD수첩 작가들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다. PD수첩을 통해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꿈을 응원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노력과 수고가 상처입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번 작가 해고사태로 인한 PD수첩의 결방사태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기를 또한 바란다. 여전히 대다수의 우리는 알권리에 목말라하고 있고, 계속해서 진실의 문을 두드려줄 사회적 목탁을 절실히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강은경 드라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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