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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난폭할거야" "모자랄거야"… 조현병, 편견의 굴레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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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난폭할거야" "모자랄거야"… 조현병, 편견의 굴레에 운다

입력
2012.08.3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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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에게 첫사랑은 추억으로 남는다. 이루지 못한 아픔도 일상에 묻혀 아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첫사랑의 상흔을 오래도록 지우지 못한다. 신명숙(53)씨도 그랬다. 첫사랑의 상흔은 그에게 모진 병을 안겼다. 수십 년 약에 의지해 살았던 그가 이제 "행복하다"며 웃는다. 신씨에게 행복을 알게 해준 이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지금의 남편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씨 부부는 괜찮다며 병명을 밝혔다. 조현병(調鉉病ㆍ정신분열병)이다. 인터뷰 내내 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폭력성? 지능저하? NO!

"대학 갓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때였어요. 첫사랑과 결혼해 유학 갈 생각이었는데, 남자 쪽 부모님이 일류대학 안 나왔다며 반대하셨어요. 너무 충격 받아서 부모님껜 말도 못 하고 잠도 못 자며 끙끙 앓다 의식 잃고 쓰러졌죠. 정신차려 보니 병원이었어요."

그리곤 사람이 두려워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쫓아다니며 뒷조사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한다고 여겼다. 실제로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신씨는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 조리에 맞지 않는 말, 피해망상이나 과대망상 등은 조현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조현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의 신호전달 체계가 잘못돼 생긴다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의가 동의한다. 갑작스런 정신적 충격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도 뇌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약 먹으면 나아졌다 약 끊으면 재발하는 상황이 10년 넘게 계속됐어요. 정신과 진료실 앞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 다른 환자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아 견디기 너무 힘들었죠. 내가 조현병 환자란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꼬박 15년이 걸렸어요."

지인의 소개로 용인정신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며 신씨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경리업무나 컴퓨터 같은 사회적응훈련을 받으며 새 삶을 꿈꿨다. 증상이 점점 나아지면서 중소기업 경리로 취직했다. 성실하고 꼼꼼한 일처리가 인정을 받아 자리를 10여 년 지켰다.

"사실 직장엔 조현병이라는 걸 숨기고 다녔어요. 제때 약 먹으면 동료들도 내가 아픈지 모르는데, 굳이 얘기하면 뚜렷한 증상이 없어도 이상하게 보거나 피할 게 뻔했으니까요."

조현병 환자에게 이상한 행동이 보이는 경우는 대부분 발병 초기다. 망상이나 환각, 환청 같은 양성증상이 나타나서다. 이 때문에 다중인격장애나 사이코패스처럼 조현병 역시 난폭하고 위험할 거란 오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조현병은 폭력적이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위축된다. 병이 안정기에 접어들면 감정 표현이나 주의력, 말수가 줄어드는 등의 음성증상으로 넘어간다. 이럴 땐 매사에 무관심하거나 게으르거나 지능이 낮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현병은 인지기능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통원치료하며 여느 부부처럼

"재활치료 받는 동안 환자들 모임에서 남편을 만났죠. 남편은 대학입시 떨어진 충격으로 발병했다 나은 뒤 직업군인으로 일하던 중 부상으로 치료 받다 재발했어요. 마음이 통했지만, 친정에서 결혼은 안 된다고 말렸어요. 정신병자끼리 만나 어떻게 살 거냐면서요."

하지만 두 사람은 주변의 예상을 보란 듯 뒤집었다. 신씨는 자신이 다니는 병원의 시설관리과 직원으로 병동청소 일을, 남편은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평범한 부부처럼 알콩달콩 산다. 닭살부부라는 별명도 얻었다. 결혼 후 13년. 부부 모두 입원 한번 안 했다. 병을 거의 극복한 신씨와 달리 남편은 그래도 가끔 낌새가 보인다.

"하루 종일 목욕탕에서 꼼짝 앉거나, 이리저리 정신 없이 왔다갔다 하거나, 기운 없다 하고 살이 확 빠지면 경험상 발병한다는 징조에요. 그땐 바로 병원 가면 돼요."

조현병 치료의 가장 큰 어려움은 환자가 스스로 병을 인정하지 않거나 주변 시선을 의식해 약을 제때 챙겨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재발을 거듭해 치료 성공률이 떨어진다. "스스로 생각을 바꾸고 의지를 다져야 병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부부는 같은 병을 앓는 이들에게 기부하고 싶다며 갚진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 수용시설 강제입원은 '만성화' 초래

10여 년 동안 약 복용과 통원치료만으로 증상을 조절하고 있는 신명숙씨 부부는 조현병 환자 중에서도 치료를 상당히 잘 받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발병 초기부터 이렇게 꾸준히 잘 치료하면 조현병 환자도 얼마든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조현병 치료는 정신병동 같은 수용시설에 장기 입鞭쳔객?방식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환자를 위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다. 굳이 입원할 필요까지 없는 환자를 강제로 또는 오랫동안 입원시키면 치료 비용이나 환자의 삶의 질뿐 아니라 치료에도 도움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타의로 입원하며 치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하면 재발이 잦아 결국 만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현병은 약을 임의로 끊은 뒤 평균 8개월 만에 재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독일에선 조현병 환자 입원 후 1주일부터 매주 입원적정성 평가를 하며, 일본은 조기 퇴원을 유도하는 의료행위에 높은 수가를 책정하고 있다. 대만은 전국 100여 곳의 병원에서 의사가 일정 간격으로 조현병 환자의 집을 방문하는 홈케어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먹는 약을 꾸준히 챙기기 어려운 조현병 환자를 위해 최근에는 한번 맞으면 한달 동안 약효가 지속되는 주사제도 나와 입원을 줄이면서 치료 효과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가 자신의 의사에 반해 입원하는 비율이 유럽은 3~30%인데 비해 한국은 90%가 넘는다(2007년 기준). 장기지속형 주사제도 유럽은 전체 조현병 치료제 시장의 20%를 차지하는데 한국은 2%에 불과하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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