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었던 '럭비공 태풍' 덴빈이 서울을 정조준하며 북상하고 있다. 서해상을 통해 30일 오후 태안반도 부근에 상륙할 것으로 보이는 제 14호 태풍 덴빈은 세력이 약해지고 있지만 상당히 느린 속도로 중부지방을 관통, 많은 비를 쏟아부을 가능성이 높아 큰 피해가 우려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덴빈은 29일 오후 3시 대만 타이베이 북동쪽 약 470㎞부근 해상에서 북진하고 있으며 30일 오전 목포 남서쪽 130㎞해상을 통과할 예정이다. 중심기압 980헥토파스칼에 평균최대풍속 초속 31m, 강풍반경 200㎞의 소형 태풍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서해를 따라 북상하는 덴빈이 30일 오후 9시쯤 서울 남남동쪽 90㎞부근까지 상륙, 31일 오전 9시쯤 강원 속초 해상 동북동쪽 30㎞ 지점을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형태풍이지만 상당히 느린 속도로 한반도 허리를 관통, 초강력 태풍인 볼라벤보다 더 큰 피해를 수도권에 입힐 가능성이 높다. 예상 강우량은 수도권과 충청ㆍ전라 지역 대부분에 30~100㎜, 경상도와 강원영동 지방 20~60㎜, 서남해안 일부 지역과 지리산, 제주도 부근은 최고 150㎜ 이상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볼라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비가 더 강한 태풍인 덴빈이 북태평양 고기압에 가로 막힐 경우 동해로 빠지지 못해 중부지방에 많은 비를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덴빈이 한반도를 기습하리라고는 기상청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진로를 이탈했다가 '공중 1회전'을 하고 우리나라 쪽으로 북상하는 이상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덴빈은 지난 19일 필리핀 남쪽 해상에서 발생할 당시만 해도 대만을 거쳐 중국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덴빈은 24일 대만을 비켜 서진하다 26일에 돌연 남쪽으로 돌았다가 28일 다시 방향을 바꿔 볼라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인접한 태풍끼리 서로 영향을 미치는 간섭효과, 즉 '후지와라 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 전문가들도 '미스터리'라는 반응이다. 이현규 기상청 통보관은 "덴빈과 같은 소형 태풍일수록 상층 기압골, 북태평양 고기압의 상태 등 주변 변수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며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덴빈처럼 럭비공 경로를 보인 태풍이 간혹 있었다. 1986년 8월 발생한 태풍 웨인은 남중국해상에서 반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시계 방향으로 두 바퀴를 돈 다음 베트남에 상륙했다. 1998년 9월 발생한 예니는 제주 오른쪽 해상을 통해 북상해 전남 여수 부근에 상륙하자마자 후퇴한 뒤 소멸되기도 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