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6ㆍ25 전쟁을 거치면서 부산에 주름이 마이 생겼지예. 그런데 인자는 그 주름 주름에 재밌는 이야기들이 깍찼다 아입니꺼. 한번 와서 들어보이소.”
‘이야기 할배(할아버지) 할매(할머니)’가 포구와 해수욕장이 어우러진 부산 해운대와 기장군 일대에 뜬다. 다음달 1일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이야기 할배할매’는 지역의 지리와 문화를 잘 아는 부산 노인들로 구성된 일종의 관광 안내팀. 관광객들과 코스를 함께 걸으며 해당 지역에 숨겨진 이야기와 절경을 걸쭉한 부산 사투리로 소개한다.
83세로 최고령 안내자인 이영근씨는 “부산은 100여년 전 북진정책을 펼치던 일제가 마구 개발하면서, 또 한국전쟁 중에는 인구가 10배로 늘면서 연안이 크게 훼손돼 별 볼 일 없는 해안도시였다”며 “하지만 부산시민들이 악착같이 달려들어 지금은 완전 새로운 부산이 된 만큼 그 과정의 이야기를 양념으로 곁들여 관광객들에게 부산의 매력을 알릴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골목, 건물, 항구, 등대 등등 코스에서 눈에 띄는 것들 하나하나가 이야깃거리라는 설명이다.
부산의 중학교에서 국어와 역사, 한문교사를 했던 이씨는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20여년 전부터는 각종 실버단체서 활동하고 있는 부산 토박이. 3년 전부턴 한 복지관에서‘실버투데이’라는 신문 제작을, 지난해부턴 시내 어린이집을 돌며 책 읽어주기 봉사활동까지 시작한 ‘열혈 할배’다. 그는 “6월 부산 기장군이 주최한 등대길 걷기 대회에 참석했다가 평생을 발붙이고 살던 부산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했다”며 “그게 인연이 돼 스토리텔러 양성 교육에 지원해 지난달 수료했다”고 했다. ‘이야기 할배할매’는 전직 공무원, 교수, 주부, 외국어 능통자, 중국인 등 다양한 경력의 27명으로 구성됐다. 6월부터 두 달 동안 집중 교육을 받아 맡은 구역에 관한 ‘달인’들이다.
이씨가 맡은 코스는 ‘기차소리길’. 동백섬 등대에서 해운대 해수욕장, 미포, 문텐로드를 거쳐 해월정에 이르는 3시간 코스다. 그는 “걷다 보면 머리 쏙 고민이 싹 사라지는 ‘힐링 루트’”라고 소개했다. 이 코스 외에도 ‘등대길’, ‘포구길’ 등이 운영되며, 이씨의 스토리텔러 동기들이 고루 배치된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해운대 동백섬 등대, 해동 용궁사 입구, 학리 포구 옆 정자에 가면 할배할매 이야기꾼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