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판매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국민의 건강이다. 무분별한 오ㆍ남용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있다면 당연히 의사의 처방전을 거쳐 구입하게 해야 하고, 이미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된 것은 접근성을 높여 누구나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수시로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변경(재분류) 하는 것도 이런 목적에서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어제 심의를 통해 기존의 일반의약품 262개는 전문의약품으로, 전문의약품이었던 200개는 일반의약품으로 변경했다. 착란이나 환각 등을 일으키는 멀미약 어린이 키미테 패치와 단순한 간질환 약이 아닌 담석증이나 간경화증에도 사용되는 고함량 우루사, 세균에 대한 내성 우려가 있는 여드름 치료용 항생제 연고인 트리코트크림 등이 전문의약품으로 바뀌었다. 그 동안 손쉽게 구입해온 소비자들에게 다소 불편을 주더라도 부작용이 입증됐다면 의사의 처방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 맞다.
반대로 안전한 저함량 위염약인 잔탁정, 알레르기 치료제인 알레그라정, 진균(무좀)치료제인 카네스텐플러스 등을 일반의약품으로 돌린 것 역시 편의성 측면에서 현실적인 조치로 보인다. 오용이나 별 부작용 염려도 없는 무좀약 하나 사기 위해 병원에서 처방전까지 받게 하는 불편과 이중부담을 국민들에게 줄 필요는 없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안전성과 윤리성을 놓고 의료계, 약사단체, 여성계, 종교계에서 논란이 벌어졌던 피임약에 대한 결정이다. 당초 지난 6월 정부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제안대로 사전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긴급(사후)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바꾸기로 했다. 세계적인 추세로 과학적으로 타당하고, 사전피임약의 남용으로부터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자는 것이 당시의 명분이었다. 그래 놓고 새삼스럽게 저조한 국내 피임약 복용률과 풍선효과에 의한 긴급피임약의 남용 가능성을 이유로 애초의 분류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국민건강과 직결된 정책은 신중할수록 좋다. 그러나 불과 2개월 전의 판단을 뒤집는 갈팡질팡 행정은 이해집단 눈치보기와 소신부족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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