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를 업으로 살던 선배가 한 달 전에 돌연 가게를 접었다. 예고도 없이 징후도 없이 왜 갑자기 이러느냐는 타박에 무심히 말하노니, 지겨워서라고 했던가.
하늘 아래 남의 돈 먹고 사는 일에 호기로울 사람 아무도 없다며 나는 찌릿 눈을 흘기기도 했으나 솔직히 마음 한구석에 부러움이 치미는 것도 사실이었다. 야, 그럼 너도 때려치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명절에 동태전도 안 뒤집고 교정지나 넘기냐. 인생 별 거 없다. 네 몸이나 챙기고 대충 살아.
참 나, 그럼 내가 대충 살았지 안 대충 살았나 뭐…… 투덜거렸지만 가만 보면 이게 다 버리지 못해서 벌어진 사단이란 소리가 아니었을까.
이사 준비로 옷장 정리를 하는데 서랍마다 안 입는 옷들이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다. 버릴 건 버리고 세탁소에 맡길 건 맡겨야지 하며 옷들을 마루에 산더미처럼 쏟아 놓고 나름 분류랍시고 나누는데 아무리 명품이라도 살이 쪄서 입지 못하면 내 코트가 아닌 것을, 아무리 선물이라도 너무 찢어져서 입지 못하면 내 청바지가 아닌 것을, 나는 왜 이것들을 근 십 년 가까이 끌어안고 이삿짐 트럭 위를 전전했을까.
뭔가 달관한 사람처럼 가뿐해졌을 줄 알았는데, 한 달 만에 만난 선배는 여전히 그 지겹다는 사람들과 함께 복잡다단한 일상들로 빼곡한 다이어리를 내게 열어 보였다. 음주운전으로 재판하게 생긴 친구의 재판정까지 따라가는 선배님, 어쨌든 복 받을 거야.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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