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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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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08>

입력
2012.08.2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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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봐도 서양 사람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겠도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네 학문을 서도라 부르고 천주를 섬긴다 말하며 성인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것이라 말하지만 이는 하늘의 때를 알고 하늘의 명을 받은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략하면서 말로는 천주를 섬긴다고 하니 행동과 말이 이렇듯 상반되는 경우가 하나둘이 아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나라와 백성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마음속으로는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 말을 듣고 나가서는 길거리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며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려고 하지를 않는도다.

어느 날 몸에 몸살과 오한이 나면서 밖으로는 신령과 접하는 기운이 일고 마음속에서는 가르침을 전하는 음성이 들려왔도다. 보려 해도 눈으로는 보이지가 않았고 들으려 해도 귀로는 들리지 않아서 괴이한 일이라 여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스스로 물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오니까? 하니 답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어찌 알겠는가? 사람들은 천지는 알면서도 귀신은 모르는데 그 귀신이 바로 내로다. 네게 모든 일에 통용되는 도를 전해줄 터이니 그 도를 닦아 글을 지어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법을 바로 세워 덕을 펼쳐라. 나는 그 말이 참말인지 마귀에게 홀린 것인지 한 해 동안 수련하며 생각해보니 모두 자연의 이치를 말한 것이더라. 유학을 하는 선비들은 순수한 마음인 신(神)은 하늘에 있고 몸의 욕망인 귀(鬼)는 땅에 있어 그 마음의 순수함과 욕망이 함께 있으니 군자는 학문과 수도로 순수한 마음을 지킬지언정 어리석은 소인은 좋은 마음을 지닐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마음을 지니려는 작용이 있고 이를 간직할 수 있다고 말하려 한다. 좋은 마음이란 부귀빈천에 상하차별 없이 어느 사람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느니라.

천상의 상제가 하늘 궁전에 계시다고 보는 듯이 말을 하니 음양 이치 고사하고 허튼소리 아닐런가. 사람이 바로 하늘이니 사람 밖에 하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 밖에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좋은 마음이 하늘이니 그 마음을 존귀한 하늘처럼 소중하게 받들어서 좋은 마음에 따라 사는 것이 곧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길이로다. 그 말을 확신하고 나서 본 주문을 짓고 강령주문을 짓고 불망주문을 지어 순서를 정하여 늘어놓으니 스물한 자가 되었도다.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原爲大降) 시천주 조화정(侍天主 造化定) 영세불망 만사지(永世不忘 萬事知)

지극한 기운이 이제 이르렀으니라는 말은, 지극한 허령이 창창하여 일에 간섭하지 않음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않음이 없으며,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것 같지만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기운이로다. 하늘의 지극한 기운이 내가 되었다는 뜻이로다. 원위는 청하여 비는 것이요 대강은 그 기운에 교화됨을 원하는 것이다. 지기금지 원위대강이란, 하늘의 지극한 기운이 지금의 나에 이르렀으니 그에 동화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니라. 시천주 조화정은, 하늘님을 내 마음과 몸에 모신 나는 창조와 진화를 스스로 정했다는 뜻이며, 영세불망 만사지의 영세는 사람의 한 평생이요 불망은 생각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며 만사지는 자신의 모든 일을 하늘의 도에 맞게 행하는 것이니라.

하늘의 지극한 기운이 내게 이르렀으니, 하늘님을 모신 나는 스스로 조화를 정하여, 평생 잊지 아니하고 하늘의 도에 맞도록 행하겠습니다.

사방의 어진 선비들이 나에게 와서 물었다. 하늘의 신령한 기운이 선생에게 내렸다고 하는데 무엇을 말함인가.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는 자연의 섭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면 좋은가. 천도(天道)라고 부른다. 천도라고 하면 서학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서학은 천도를 따르는 것 같지만 천도를 따르자는 것이 아니고 기도를 올리는 것 같지만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천도를 말하고 기도를 올리는 겉모습은 같지만 그 내용이 다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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