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왕, 불쌍해서 어떡해."
시즌 중 한화 선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다. 선수들 스스로 "감독 탓만이 아니다. 꼬일대로 꼬여 어디부터 건드려야 할지 모르는 게 한화"라고 했다. 양승호 롯데 감독과 김진욱 두산 감독은 '복 받은 감독'이라고 했다. 좋은 팀을 물려 받아 한대화(52) 한화 감독과의 처치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한 숨을 푹 쉬었다.
한 감독이 28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전격 경질됐다. 구단은 27일 한 감독과 노재덕 한화 단장이 만났고, 이 자리에서 한 감독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한 감독은 지난 2009년 9월 부임, 계약 기간이 올해까지였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2010년 최하위, 2011년 공동 6위, 올 시즌은 27일 현재 39승2무64패로 팀이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말처럼 모든 것을 감독의 책임으로만 돌릴 순 없다. 그 동안 한화 구단이 보여준 행태는 이번 사태를 예견하기 충분했다. "일 처리를 하는 걸 보면 답답하다. 전문가는 없고 아마추어뿐이다." 거짓말처럼 한화 선수들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장성호 영입에 6개월 걸린 아마추어
트레이드는 쉽지 않다. 서로 카드가 맞아야 한다. 그러나 끌어도 너무 끌었다. 한화는 KIA에 공개적으로 트레이드를 요구한 장성호를 데려오는 데만 장장 6개월을 썼다. 장성호는 지난 2009년 11월 FA를 선언하면서 팀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연봉 계약을 한 순간에도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당시 한 감독은 장성호를 영입해 달라고 구단에 밝혔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팀 공격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린 선수들이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장성호는 2010년 6월 3대3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로 왔다. 하지만 구단은 더딘 일처리를 보였고 애꿎은 시간만 낭비했다. 낙후된 행정력. 한화의 현주소다.
"내 등 번호 돌려줘" 99% 마음 먹은 이범호마저 놓쳤다
일본 생활을 정리하던 이범호(KIA)는 한화 후배에게 전화 한 통을 넣었다. "한화에서 원래 쓰던 등 번호를 달고 싶다. 네가 양보해 줬으면 좋겠다." 이범호는 2009년까지 7번을 달고 한화 3루수로 활약했다. 2010년 일본에 진출한 뒤엔 8번을 달았지만 2011년 다시 자신의 번호를 달고 한화에서 뛰길 원했다. 후배는 선뜻 등 번호를 양보하겠다고 밝혔다. 이범호 역시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며 섭섭하지 않게 사례하겠다고 답례했다. 그러나 며칠 뒤 이범호는 한화 7번이 아닌 KIA의 25번을 입고 있었다. 친정팀이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상식 밖의 태도에 단단히 마음이 상한 것이다. 한 야구인은 "납득할 수 없는 협상 태도였다. 투자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며 "양측의 입장 차가 1~2억원 사이였다. 그러나 구단은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고 소식을 접한 선수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2012년 쏟아 부은 34억원, 결국 독이 됐다
낙후된 행정력과 투자에 인색하다는 이미지. 한화는 결국 올 시즌에 앞서 돈다발을 풀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김태균에게 15억원의 거금을 안겨줬고 박찬호는 6억원, FA 송신영은 3년간 총 '13억원+알파'에 영입했다. 리그 최고 수준의 에이스 류현진이 버티고 있는 상황. 확실한 4번 타자와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 필승계투조를 얻었으니 만족할 만한 투자를 한 듯 보였다. 하지만 정작 선수단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식구'인 팀내 선수들과의 연봉 협상테이블에서는 구단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한화는 전반기까지 부진을 거듭하다 후반기 거침없는 상승세로 공동 6위에 올랐다. 내심 단독 6위까지 노렸지만, 롯데와의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3연전에서 아쉽게 순위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선수들의 인상 요인은 충분했다. 특히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이대수와 박정진 등 팀을 위해 헌신한 베테랑들은 큰 목소리를 낼 만 했다. 하지만 구단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우승을 노려보겠다면서 스타 챙기기에만 급급한 구단. 여기에 최근 3년 간 용병 농사 한 번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거의 유일한 구단. 사실 올 시즌 성적은 불 보듯 뻔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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