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그 동안 한일문제 관련 기사를 써온 기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1952년 이른바 '이승만 라인'으로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한 이후 독도를 둘러싼 한일 논란은 대체로 일본의 도발에 한국이 대응하는 형태였다. 돌아보면 그럴 때마다 항상 더 흥분하는 것은 정부보다는 국내 언론(여론)이었다.
정부는 그런 언론을 늘 말리고 나서는 쪽이었다. 물론 드러내놓고 보도 자제를 요청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정부는 한결같이 "좀더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을 주문해온 것이 사실이다. '조용한 외교'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이미 실효적 지배 상태를 확립한 독도가 국제분쟁지역으로 비치는 것은 전혀 도움될 게 없다는, 정권이 바뀌어도 한결 같았던 외교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그간 숱한 비난을 감수해가며 정부가 지켜온 이 같은 외교 원칙을 뒤집었다. 우리 땅에 우리 대통령이 가는 데 뭐가 잘못이냐고 묻는 건 너무 단순하다. 대통령이 독도에 가는 것은 제주도에 가는 것과 외교적 메시지가 다르다. 갑작스럽게 독도를 방문해야 할 이유도 헤아리기 힘들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경고라는 건 좀 억지스럽고, 지난 4월 도쿄에서 열린 시마네현의 독도 관련 집회에 대한 대응이라면 타이밍이 늦었다. 그래서 이번 방문이 독도 관련 대일 외교를 공세적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이번 독도 방문으로 무언가 다른 수확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3년 동안 늘 가고 싶었다던 독도를 마침내 갔으니 이 대통령은 속이 후련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후 한일관계는 지금 보는 대로 한 순간 뒤죽박죽 됐다.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운운하며 서한까지 보내 독도의 국제분쟁지역화로 한걸음 내디뎠다. 경제 협력이며 문화 교류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무엇보다 양국 정부가 서로를 "무례하다" "이성을 잃었다"며 폄하하기 바쁘다.
사태의 책임이 아직도 침략주의 역사 인식을 바로 잡지 않고 있는 일본에 있다고 말하면 그만일지 모르나, 그것을 해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역대 대통령이 재임 중 적어도 한 번씩은 입에 담았고, 이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유난히 강조했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그렇게 양국이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겠는가.
이 대통령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2008년 후쿠다 야쓰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합의해 진행된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란 게 있다. 그 결과물을 담은 3권짜리 책이 지난 주 나왔다. '한일관계분과' 연구에 참여한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책에서 '역사 마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인 일본의 겸허한 태도와 피해자인 한국의 역사적 화해를 위한 관용적 태도가 요청된다'고 말했다. '역사 마찰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단기적으로 마련되기 어렵다'고 전제한 그는 차선책으로 양국간 마찰 발생을 예방적 조치를 통해서 가능한 한 억제하고 불가피하게 마찰이 발생한 경우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도발해올 경우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렇게 도발해올 빌미를 우리가 던지는 것은 외교전략으로도,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도 전혀 불필요한 일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에다 한류 바람까지 더해 한일 시민 사이의 정서적인 친근감이 어느 때보다 돈독하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양국의 진보적인 시민단체가 쌓아온 협력관계도 십 수년을 헤아린다. 한일 시민사회가 느리지만 한 장 한 장 쌓아가는 신뢰의 집 짓기가 이번 일로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김범수 문화부 차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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