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명에 이른다. 최근 30대 가정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전과 11범 서진환(42)을 비롯해 이달까지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10명이다. 전자발찌를 차고도 또 다시 성범죄로 검거된 사람은 2008년엔 1명. 2009년엔 없었으나 2010년 3명에 이어 지난해엔 15명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보다 강력한 제재수단으로 지난해 7월 화학적 거세법이 시행된 후 최근 검찰이 청소년 성폭행범을 상대로 '화학적 거세'(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 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실효성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선 응답자의 54%가 화학적 거세가 성범죄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답했다. 2000~2004년 사이 미국 오리건 주에서 가석방된 성범죄자 가운데 약물치료를 받은 사람 중에선 재범자가 나오지 않은 점도 화학적 거세에 힘을 싣는 부분. 약물치료를 받지 않은 성범죄자 5명 중 한 명은 다시 성범죄를 저질렀다. 반면 비뇨기과 전문의들은 화학적 거세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한다.
화학적 거세는 호르몬을 투여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 작용을 억제하는 방법. 16세 미만 아동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19세 이상 성범죄자 중 성도착 증세가 있어 다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뇌의 지시를 받은 고환에서 분비된다. 대뇌 아래 있는 시상하부에선 황체유리호르몬(LHRH)이 나온는데, 이 호르몬은 뇌에 있는 뇌하수체가 황체호르몬(LH)을 만들게 한다. LH는 혈관을 타고 내려오면서 고환을 자극해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돕는다. 목소리, 체형을 남성답게 하는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가 높아지면 성욕이 왕성해진다. 화학적 거세는 호르몬 신호를 받은 고환이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기 전에 중간 길목을 끊어 '성욕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김제종 고려대 안암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호르몬은 모두 화학적 거세에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게 성선자극호르몬(GnRH). 이 호르몬은 일시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한다.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몸은 깜짝 놀라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를 확 낮춘다. GnRH은 10여 년 전부터 전립선암 치료에 쓰여 안전성도 검증돼 있다. 이외에도 LHRH 억제제와 테스토스테론의 작용을 막는 스테로이드계열 약물과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을 이용한 것들이 있다.
그러나 화학적 거세가 모든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마냥 비춰지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두건 고려대 구로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성범죄자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정상인 보다 높았다는 연구결과가 있냐"면서 "충동조절장애 같은 정신병이 성범죄로 나타나는 것인데, 성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테스토스테론만 조절하면 된다는 식의 접근은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주태 관동대 제일병원 비뇨기과 교수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남성호르몬을 차단한다고 해서 온순해지지 않는다"며 "설사 성욕이 떨어진다 해도 살인과 같은 다른 방식으로 폭력성이 표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상 남성이 사고로 고환을 잃는다 해도 발기가 가능한 만큼 단순히 남성호르몬을 줄이는 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호르몬 주사를 놔 테스토스테론 혈중 농도를 낮춰도 뇌의 학습효과에 따라 자극이 오면 충분히 발기가 된다.
비용도 문제다. 호르몬 주사는 효과가 지속되는 기간에 따라 4주, 12주로 나뉜다. 1회 투여비용은 각각 20만, 50여만원 선. 남성호르몬 촉진제를 몰래 먹으면 효과가 없어 남성호르몬 감퇴 여부도 지속적으로 검사해야 한다. 주사값, 검진비 등을 따지면 성범죄자 개인당 호르몬 주사를 놓는데 매년 수백 만원이 든다. 문 교수는 "상습 성범죄자는 성장과정에서 성적 좌절을 겪었거나 성폭행 피해자였던 만큼 남성호르몬에 집중하기보단 제대로 된 성교육 실시 등 이들이 엇나가지 않게 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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