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구 사시려우?
백화가 걱정스럽게 물으니 신통은 그냥 편안히 대답했다.
금강산이 좋다 하니 유람이나 가보려고……
무슨 미역 사러 나간 정수동이두 아니구 갑자기 왜 그러우?
이신통은 백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웃을 듯 말 듯 하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꼭 득음을 할 거요.
이신통이 떠나겠다는 작별 인사에 손 선생이 물으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여향(餘響)을 찾아볼까 합니다.
이신통이 부안을 떠난 뒤에 고향을 찾았는지 어쨌는지 백화는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 백화는 손 선생의 공청에서 몇 해 머물며 기량을 닦았고 그녀가 연행 유람을 떠난 뒤에 선생은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죽기 전에 그녀를 찾았다고 한다. 백화가 십여 년 세월이 지나 부안에 들렀을 때 선생의 자식들인 남매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그녀를 식구로 받아들였다. 백화는 한양에서도 알려진 최초의 여명창이 되었건만 공연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즈음에는 간혹 한두 사람의 여명창이 남성 예인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백화의 명성을 따르지는 못하였다. 백화가 이신통과 손 선생의 사이에서 어떤 심경을 겪었는지 겉으로 드러내고 말하지 않았으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녀는 헤어지는 자리에서 연옥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나게 되면 내 말이나 좀 전해주세요. 이제는 여향을 알게 되었냐구요.
5. 하늘과 땅과 사람
또다시 덧없는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강경 저자에서도 뱃길이나 육로를 따라 행상에 나갔던 상단들이 돌아왔고 장터는 인근 지방에서 설빔을 준비하러 나온 장꾼들만 붐비고 있었다. 내가 전주 남원 거쳐서 부안으로 나들이를 다녀온 사이에 엄마가 시름시름 앓더니 아예 드러눕고 말았다. 갑오년 동학 난리 나던 해에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우리 땅에서 전쟁을 치렀고 이듬해 왕후 민씨를 죽이는 변이 있고 나서 호열자가 돌기 시작하였다. 지난 여름까지 한양으로 번졌다가 여름 경에 더욱 극성하여 경기도를 넘어 호서 지방으로 번지기 시작했다는데 벌써 수천 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의원을 데려왔더니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역병인 듯 보인다며 관아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집에 우환이 있고서야 강경의 몇 집에 환자가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에서 사령배가 나와 우리 집에 금줄을 치고 손님을 받지 못하게 하였으며 의원은 엄마를 뒤채 윗방에 격리시키고 우리는 손님이 묵던 앞채로 모두 쫓겨났다. 찬모와 내가 엄마의 방에 드나들며 구완을 했는데 의원에 지시에 따라 온 식구가 물을 끓여 먹었고 엄마의 옷은 잿물에 삶았으며 식기 등속도 펄펄 끓는 물에 담갔다가 설거지를 했다. 다행히 식구들에게는 더 이상 전염되지 않았지만 엄마는 회생하지 못했다. 아가를 묻었던 채운산에 엄마를 묻었다.
나는 엄마를 보낸 뒤에야 부안에서 헤어질 때 백화가 내게 내주었던 책이 생각났다. 그것은 겉장에 ‘천지도경풀이’라고 언문으로 제목이 씌어 있는 필사본이었다. 백화는 그 책을 내게 내밀면서 말했다.
그 사람의 손길이 남아 있는 글씨랍니다. 이제 내가 지니고 있을 필요는 없겠지요.
장지에 붓으로 쓰고 구멍을 뚫어 노끈으로 얽어맨 책은 귀퉁이가 동그랗게 닳았고 누렇게 변색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 경문이 원래는 한자로 되어 있던 것을 신통이 스스로 우리 글로 풀어서 옛날이야기처럼 엮은 것으로 보였다. 그가 한양 시절에 서 지사와 더불어 책을 인쇄하였다고 하는데 천지도경과 천지도가의 두 책이었다고 하더니, 그는 아마도 다른 방각본 언패소설 책들과 함께 자기의 것을 간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신통이 부안에 머물던 무렵에 이들을 풀이하여 여러 권의 언문 필사본을 베껴두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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