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계동 보건복지부 기자실에 나타났다. 복지부 산하 단체장들이 기자실에 찾아와 현안을 브리핑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노 회장의 방문은 의외였다. 포괄수가제(입원비 정찰제) 관련 수술 거부와 거짓 언론 홍보에 대해 기자들이 아무리 비판해도 아랑곳 않고 '마이 웨이'만 외쳐온 노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 회장은 이날 "사과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가 사과하겠다는 사건은 지난 6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7월 1일 포괄수가제 시행을 앞두고 수술 거부를 결정한 의협은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국민 설문조사로 거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설문조사 발표 기자회견을 앞두고 의협은 "의협 역사상 가장 중대한 발표"라고 분위기를 잡았지만 발표 내용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중재로 수술 거부를 철회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설문조사 결과는 포괄수가제 선호(51.1%)가 현행 행위별수가제(23.3%)보다 2배 넘게 많았다. 결국 알맹이도 없이 정 의원을 위해 기자들을 '들러리' 세운 셈이었고, 이를 뒤늦게 사과하러 온 것이다.
노 회장은 임채민 복지부 장관에 대해서도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노 회장은 5월 취임 후 만나지 않고 있던 임 장관에게 불과 한 달 전 공개편지를 보내 "(내가 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장관이 직접 방문해 의견을 청취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날 노 회장은 "복지부는 설득해야 하는 대상인데 그 동안 그 점 간과한 것 같다"며 "광복절에 임 장관에게 진지하게 이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태도를 진정한 '참회'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복지부 관계자들은 "장관에게 보낸 이메일이 진지하지 않을뿐더러 며칠 전에도 한 인터뷰에서 '복지부는 초등학생 수준'이라고 비방하는 등 노 회장이 오락가락해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고 입 모아 말했다. 의협은 기자실 방문 이틀 후에도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내 "건강보험공단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복지부 산하기관을 비방했다. 진심을 알기 어려운 갈짓자 행보의 연속인 것이다.
노 회장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경만호 전 의협회장에게 계란을 던졌을 때다. 대학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며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위대를 갈라놨다는 '과거'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 회장의 지지층은 젊은 의사들이다. 갈수록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개원의, 근무환경이 열악한 인턴 레지던트 등의 권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들의 권익을 위해 국민에게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홍보를 일삼는 등 과격한 행보로 그의 문제제기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전문의 경력 30년의 한 의사는 "최근 의협이 정부와 타협을 거부하고 불필요하게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이 오히려 의사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을지 걱정"이라며 "의사들이 집단적으로 욕만 먹는 건 아닌지 회원들도 답답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 복지부, 그리고 의사들조차 노환규 회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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