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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안철수 룸살롱'에 비친 언론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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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안철수 룸살롱'에 비친 언론 자화상

입력
2012.08.2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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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안철수 룸살롱' 혹은 '박근혜 콘돔' 사건 말이다. 발단은 안철수씨가 과거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룸살롱 같은 데 가본 적이 없다고 한 것과 달리, 그와 함께 룸살롱을 드나들었다는 주변인들의 증언이 잇따랐다는 신동아 9월호 보도. 지난 20일 오후 동아닷컴에 발췌 기사가 뜬 뒤 파문은 엉뚱하게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검색어 조작 의혹으로 번졌다. 룸살롱은 청소년 유해어여서 검색을 하려면 성인인증이 필요한데 네이버에선 '안철수 룸살롱'은 바로 검색되고 '박근혜 룸살롱' 등은 인증을 거쳐야 했던 것. 네이버 측의 석연치 않은 해명, 그 과정에서 예로 든 '박근혜 콘돔'이 또 다른 화근이 됐다. 파도타기 하듯 번진 집단 '검색어 놀이'로 네이버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상위권은 한때 룸살롱(또는 룸싸롱)과 콘돔 연관 검색어로 뒤덮였다.

이 거대한 촌극의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그간 심심찮게 제기돼온 네이버의 검색어 조작 논란이 다시 불붙었고, SNS의 위력에 기댄 각종 꼼수가 판을 칠 올 대선 사이버 선전전의 트레일러(예고편)를 본 셈이라는 등 갖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콘돔' 언급에 대해 네이버에 공식 사과를 요구했고,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심재철 최고위원의 발언 등을 통해 '안철수의 거짓말'을 이슈화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황당하면서도 흥미진진하고 의미심장한 이번 사건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사건의 발단, 그리고 전개 과정에 드러난 한국 언론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내 눈에 든 들보를 헤아리면 발단이 된 신동아 보도에 대해 "이게 무슨 기사냐!"고 핏대 올려 비난할 처지는 아니지만, "기사를 이렇게 써도 될까?"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먼저 전제로 삼은 팩트 자체가 틀렸다. 기사는 안씨가 2009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여종업원이 배석하는 술집 자체를 모른다"고 말했다고 썼고 이 기사를 받아 쓴 일부 언론들도 그대로 인용했지만, 해당 방송을 보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안씨가 지금은 술을 안 마시는데 예전에는 잘 마셨다는 얘기 끝에 "단란히 먹는 술집도 가보셨어요?"라는 질문을 받고는 "아뇨, 뭐가 단란한 거죠?"라고 되묻자, 진행자들이 우스개 섞어 이리저리 설명하다 분명한 답을 듣지 않은 채 담배는 피느냐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 게 전부다.

유흥문화를 다 알 만한 기업인 출신이 '단란(히 먹는) 주점'도 모를 만큼 순진한 척, 나아가 도덕군자인양 굴었다고 비아냥대는 건 몰라도, 하지 않은 말을 직접인용을 뜻하는 겹따옴표로 묶어 전제하고 거짓말을 했다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란 얘기다. 멘트를 윤색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부적절한 직접인용은 우리 언론의 고질병 중 하나로 지적돼 왔지만, 누군가의 거짓말을 문제 삼는 기사라면 더 비판 받을 일이다.

웃음과 과장이 섞인 예능프로에서 지나가듯 한 말을 잠재적 대선 후보에 대한 혹독한 검증의 도마에 올리는 게 마땅한 지도 의문이다. 이 기사는 신동아 4월호에 이미 보도한 것을 증언을 보태 다시 쓴 것인데, '이색취재'란 간판을 단 4월호 기사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왜 이 문제를 다루려는지…."(취재원) "재미있으니까요."(기자) (중략)"그분이 대통령이 될 만한 분인지 평가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은데, 사생활적인 사소한 말실수나 거짓말이 전체를 다 가려버린다면 오히려 국민의 판단 잣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취재원) 옳은 지적이다. 내 편, 네 편 가르기에 앞서 상식을 존중하는 보통 국민들의 눈높이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때 '박근혜 콘돔'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린 검색어 놀이에는, 소위 낚시질 기사로 수익원인 인터넷 트래픽을 올리려는 언론의 장삿속도 한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정치권의 이전투구에 편 갈린 언론들까지 가세해 벌인 '쩨쩨하고 위험한 검증게임'이 한층 진화해 또 어떤 해괴한 사건들을 빚어낼지 걱정이다. 너나 잘하세요, 라고? 예~.

이희정 선임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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