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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초인의 나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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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초인의 나라 대한민국

입력
2012.08.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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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는 원과 원이 서로에게 기하학적으로 몸을 겹치고 있다. 이를 국가주의와 자본주의가 흥미로운 결합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는 개인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며, 수상하면 단상에 올라 자신이 속한 나라의 국기를 보며 감동어린 표정을 지어야 한다. 그때 깔리는 배경음악은 당연히 1등 국가(國家)의 국가(國歌)다. 2등과 3등 국가는 1등 국가보다 조금 아래 단상에서 자신의 국기를 보고 있어야 한다. 근대 올림픽의 상징적인 한 장면이다. 또한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올림픽 참가가 필수적이다.

국가주의와 더불어 (아이러니하게도) 국가를 우습게 넘나드는 다국적 자본은 올림픽의 또 다른 핵심이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는 세계 곳곳에 방송되는 중계화면을 통해 상품을 광고하고, 중계 사이에 공식적 광고를 통해 다시 상품을 광고한다. 전자제품, 자동차, 음료, 시계, 패스트푸드까지 올림픽 하나에 비엔나소시지처럼 자본의 총아들이 따라붙는다. 올림픽은 공식후원사를 보호하기 위해 후원사가 아닌 상품의 노출을 금지한다. 심지어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휴대하는(물론 그들도 개인적으로 후원받은 물품일 테지만) 소품까지도 규제대상이 되고는 한다.

조금 더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올림픽은 국가와 자본이 손에 손을 잡고 펼치는 화려한 인정 투쟁처럼 보인다. 어떤 국가를 국가로 인정할 때 가장 간편한 방법은, 그 국가가 올림픽에 등장했는가 여부이다. 어쩌면 동티모르가 국가로 인정받는 순간은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 4~5명의 단출한 선수단이 국기를 앞세우고 등장하는 바로 그때일지도 모른다.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한 능력을 평가할 때, 그들이 올림픽 파트너인 사실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올림픽을 가만 보고 있으면 가장 자주 보이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며, 가장 많이 보이는 회사는 삼성, VISA, 코카콜라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웃는 얼굴로 말한다. "내가 제일 잘 나가."

이러한 올림픽에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곧 나라의 부강함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때 국가대표는 '우리나라에서 그 종목을 가장 잘 하는 누군가'가 아닌, '조국의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해야 할 1인'이 되고 만다. 국가는 선수촌을 만들어 그들의 지옥훈련을 체계적으로 돕고, 성과를 거둔 이에게는 일정한 보상을 치른다. 올림픽 정식종목에 속한 거의 모든 종목은 필연적으로 엘리트 육성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국제대회 입상할만한 수준이 아닌 선수는 낙오한다. 국가대표여도 메달을 따지 못하면 부모님이 비닐하우스에 살 수도 있다. 물론, 금메달을 따면 아파트도 받고, 평생 두고 먹지 못할 라면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멋진 몸과 정신을 지닌 젊은이보다, 국가 브랜드를 상승시킨 젊은이를 원하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의 브랜드다. 금메달이든, 은메달이든, 16강 탈락이든 상관없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서럽게 우는 것은 당연하다. 스무 살 약관의 나이에 정상에 오르면 천진하게 웃어버릴 수 있겠지만, 지금 올림픽이 마지막 기회였을 것인 30대 선수에게 그 순간은 그의 인생 전부였다. 그는 그의 인생을 걸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건, 그가 택한 종목의 '불굴의 스포츠 정신'인가 그를 택한 우리의 '냄비 같은 애국심'인가.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은 종합 5위를 달성했다. 우리나라에 본사를 둔 기업이 올림픽의 가장 큰 스폰서라고 한다. 인구나 국토, 근대 체육의 역사 등을 생각하면 가히 기적 같은 순위다. 한국인의 운동 신경이 유독 뛰어난 걸까. 한국인의 능력이 특별히 걸출한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세계 5위의 스포츠 강국인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고등학생은 일주일에 1~2시간의 체육시간을 할당 받는다. 초등학교 운동장은 땅값 때문인지 점점 좁아진다. 새벽까지 올림픽을 응원하던 직장인은 평일에는 야근을 하고, 주말에는 술을 마신다. 반도체 공장에서 병을 얻어온 소녀들이 산재신청도 거부된 채 죽어간다. 골목에는 주차된 차가 가득하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공원은 늘 멀리에 있다. 파업 노동자가 22명이 죽어도 자동차는 잘 굴러간다. 이런 나라의 사람들이 이토록 메달을 따온다. 어쩌면 우리 민족은 진짜 초인일지도 모른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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