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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무동기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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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무동기 범죄

입력
2012.08.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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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의 출발점은 '모든 범죄에는 동기가 있다'는 명제다.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피해자의 주변부터 뒤져 인간관계, 금전관계, 최근 행적 등을 파악하는 이유다. 해당 범죄로 인해 누가 이득을 보게 되는지, 또는 손해를 보게 되는지를 따져 범행동기를 추출해냄으로써 용의자 범위를 좁혀 나가는 것이 통상의 수사기법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수사의 기본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통칭되는 무동기 범죄다.

■ 사실 무동기 범죄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연쇄살인의 역사적 전형인 '살인마 잭(Jack the Ripper)'사건부터가 그렇다. 1888년 가을 런던을 공포로 몰아넣은 자칭 잭은 아무 개인적 이해가 없는 매춘부 5명을 엽기적으로 살해했다. 그가 경찰을 조롱하는 편지에 쓴 것은 '즐거운 게임' '나의 작품' 등 살인의 쾌락을 묘사한 내용뿐이었다. 이 사건은 동기 추적 대신 다만 범인유형을 추정해 수사하는 프로파일링 기법 개발의 단초가 됐다.

■ 최초의 본격 프로파일링 보고서라고 할만한 당시 부검의의 분석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범인의 주기적 살인충동은 오랫동안 마음을 앓아오면서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일정한 직업 없이 적은 수입으로 생활하고, 독특한 버릇을 갖고 있는 외로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연쇄살인범 유영철이나 최근의 잇따른 묻지마 범죄의 범인이나 상습 성폭행범의 유형과 전혀 다르지 않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소외'다.

■ 일찍이 마르크스는 노동에서 인간이 배제되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필연적 현상으로 소외를 설명했으나, 현대의 소외는 복잡하고도 급격한 사회와 생활양식의 변화, 도시화, 물신주의, 경쟁주의 등이 복합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사회에선 자신의 불행과 실패의 책임이 전적으로 타자에게 전가된다. 유례없이 빠른 변화속도 속에서 주변을 돌볼 겨를조차 없던 한국사회가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더 크다는 얘기다. 공허하긴 해도 공동체문화의 복구 외에는 답이 없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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